김유례씨가 경매 재테크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지난 98년.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그는 금전출납기(캐시 드로어) 앞에 앉아 평소처럼 신문을 뒤적거렸다. 하늘의 뜻인지, 그날 따라 눈에 선명히 박히는 광고 하나가 있었다. '동국대 경매강의 수강생 모집.' 당시 식구들과 함께 슈퍼마켓에 딸린 단칸 방에서 생활하던 김씨. '내집 마련을 싸게 할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다음날 학교를 찾아가 경매 강의를 신청했다. ◆ 실패한 첫 투자의 교훈 3개월짜리 경매 강의만으로는 도무지 경매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친 김에 부동산학과 대학원에 등록했다. 낮에는 슈퍼 일을 하고 밤에는 수업을 듣는 '주경야독'이 계속됐다. 경매 지식만 쌓여가는게 아니었다. 대학원에서 만난 동기들은 대다수가 부동산 전문가들이었다. 경매 투자를 할 때 컨설턴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그녀만의 든든한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었다. 배우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99년 첫 번째 경매 투자에 뛰어들었다. 서울 정릉에 있는 전용면적 30평짜리 빌라였다. 감정가는 1억3천만원. 당시 세입자는 빌라의 전 소유주로,8천만원에 전세를 살고 있었다. 권리분석을 해본 결과 세입자(전 주인)는 후순위 임차인(임대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임차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두 번 유찰되는 것을 기다려 세 번째 6천8백만원에 낙찰받았다. 낙찰을 받고 보니 뜻하지 않은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우선 세입자를 내보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6개월 정도 임차인과 지루한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다. 결국 '미운정'이 들어버렸다. 두 번째 문제점은 낙찰받은 집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 "비정하게 세입자를 쫓아내고 굳이 이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결국 1천만원 정도의 이익만 남기고 세입자에게 집을 되돌려줬다. 금융비용과 세금 등을 따지면 손에 떨어지는 실수익은 거의 없었다. "돈은 벌지 못했지만 '현장답사'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죠. 또 명도 문제에 대한 자신감도 얻었고요." ◆ 돈 되는 리모델링 2001년 1월에는 서울 신정동의 다가구주택을 경매로 낙찰받았다. 남들은 거들떠보지 않던 다가구주택을 낙찰받은 데는 그녀만의 '계산'이 있었다. 우선 이 다가구주택은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했지만 경사면에 지어져 있어 지하 1층이 지상 1층에 가까웠다. 또 전철역과 재래시장이 가까운 역세권인 데다 건물 앞 도로가 넓어 사무실로 임대하기 좋아 보였던 것이다. '1층을 사무실로 용도 변경해 비싼 값에 임대하겠다'는게 김씨의 복안이었다. 다가구주택의 대지 규모는 18평, 지하 1층∼지상 2층짜리 건물이었으며 모두 3가구가 세들어 살고 있었다. 감정가는 1억2천만원. 김씨는 이 건물을 8천7백만원에 '내 것'으로 만들었다. 낙찰 후 김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지하 1층을 수리해 그럴 듯한 사무실로 변신시키는 것. 이후 구청에 용도변경 신고를 내 근린생활 용도로 바꿨다. 그러자 이삿짐센터가 즉시 임대를 신청했다. 리모델링 비용까지 합쳐 김씨가 투자한 금액은 총 1억2천만원. 하지만 임대보증금도 이 수준이다. 결국 김씨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건물 한 채를 갖게 된 셈이다. 이후 이 지역 땅값은 급상승, 지금은 평당 1천5백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 레버리지를 활용한 아파트 투자 경매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은 후 김씨는 아파트 경매에 도전했다. 아파트는 환금성이 좋고 임대를 놓기 쉬운 장점이 돋보였다. 지난 2001년 5월, 경기 성남시 야탑동 주공아파트가 괜찮아 보였다. 방 2개짜리 17평형에 로열층(8층)이었다. 우선 현장답사를 했다. 각종 편의시설이 근접해 있고 공원 등 주거환경도 좋아 보였다. 전철역도 가까웠다. 당시 감정가는 8천5백만원으로 주변 시세보다 1천만원가량 쌌다. 선순위 세입자가 살고 있었는데 전세금은 5천만원이었다. 문제가 없는 선순위 세입자가 있어 돈이 적게 드는 것도 장점이었다. 총 14명이 응찰했으나 3천4백만원에 낙찰받았다. 낙찰금 3천4백만원 가운데 3천만원은 은행대출을 받았다. 전세금 5천만원을 안고 사는 것이었으니 총 8천4백만원에 9천5백만원짜리 집을 장만한 셈이다. 법적으로 3천4백만원에 집을 산 것이니 취ㆍ등록세도 그만큼 절감돼 일석이조였다. 그 해 9월, 세입자를 새로 받으면서 8천5백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었다. 단 4개월 만에 투자자금을 모두 회수하고 집을 장만한 것이다. 이 아파트는 지금도 소유하고 있는데 1억5천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본인 돈 4백만원으로 6천5백만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셈이다. ◆ 뜻밖의 행운 지난 2002년 9월엔 서울 중화동에 있는 대지 27평에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다가구주택을 낙찰받았다. 당시 세입자는 5가구였다. 감정가는 1억4천만원. 임대가격을 조사해보니 1억4천만∼1억5천만원이었다. 감정가와 전세가가 비슷했던 것. 권리분석 결과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전세가격이 높았기 때문에 꼭 낙찰받고 싶었다. 감정가보다 높은 1억4천8백만원에 응찰했고 결국 낙찰받았다. 감정가보다 높게 낙찰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후 김씨에게는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다가구주택이 위치한 곳이 서울시 뉴타운 개발지역에 포함된 것. 시세가 2억원 이상으로 뛰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벌써 5천만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거둔 셈이다. 김씨는 지금까지 경매 투자에 성공한 비결은 "욕심을 적게 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손해보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만 투자합니다. 하지만 목표수익은 5백만∼1천만원으로 낮춰 잡죠. 주부들도 제대로 공부하고 경매를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싼 값에 내집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평소 '마당 넓은 집에서 사는게 꿈이었다'고 말하는 김씨는 "최근 화곡동에 있는 대지 70평짜리 집을 시세보다 30% 정도 저렴하게 경매로 샀다"며 환하게 웃었다. 최철규ㆍ조재길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