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허리를 타고 굽이굽이 드라이브 코스가 이어진다. 길은 20~30m도 가기 전에 굴곡을 만든다. 굴곡 뒤에는 또 다른 커브가 기다린다. 몇 굽이나 될까? 대관령 옛길의 아흔아홉 굽이가 떠오른다. 길 옆 가파른 계곡 아래로는 짙푸른 녹음이 미끄러질듯 깔려 있다. 녹음 밑으로는 청정한 물줄기가 흐른다. 물줄기는 바위를 만나면 하얗게 부서진다. 시원하다. 길 옆에선 전나무와 소나무,단풍나무들이 행렬을 호위한다. 낮기온은 이미 여름.그런데도 잎이 빨간 단풍 나무들이 줄을 지어 있다. 계절을 잊은 단풍은 어딘지 매력있다. 약간의 빈 틈이 보이는 여유로운 느낌이다. 지리산의 북쪽 자락을 돌아 올라가는 정령치 드라이브 코스는 이 도령과 춘향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가 얽힌 전라북도 남원에서 올라간다. 남원의 길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 정령치 코스가 시작되는 지리산국립공원 입구엔 춘향의 묘가 있다. '부덕의 으뜸은 정절이거늘 예서 되살려 온누리 밝히리라.' 묘비에 새겨진 몇 자의 글귀는 숭고한 선인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정령치 정상에 올라서면 하늘은 전체가 하나의 구체로 통일된다. 깔끔한 둥근 하늘을 보는 것은 사방이 탁 트인 정상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사방이 내려다보이는 정령치는 그래서 새해 첫 해맞이와 행글라이더 출발장소로도 유명하다. 정령치에서 남쪽으로는 지리산 반야봉과 삼도봉,동쪽으로는 달궁계곡과 뱀사골로 길이 뻗는다. 또 북동쪽으로 4∼5시간 정도 산마루를 따라 걷다보면 철쭉 군락지로 유명한 바래봉에 도달한다.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바래봉의 철쭉은 해발 5백m 하단부에서 4월말쯤 피기 시작해 한달 정도에 걸쳐 해발 1천m 정상 능선까지 올라간다. 바래봉 철쭉은 한창 때면 진홍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그야말로 진한 느낌을 준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한 뒤에는 춘향의 자취를 찾아 나선다. 광한루도 빼놓을 수 없지만 최근에는 테마공원도 생겼다. 지난 1일 문을 연 춘향테마공원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 세트를 기초로 조성됐다. 공원내 사랑의 언약판에는 연인들이 붙여 놓은 사랑의 메시지가 곳곳에 붙어 있다. 이 메시지는 타임캡슐에 보관,훗날에도 열어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또 항아리 모양의 조형물에 연인들이 양쪽에서 손을 넣으면 판소리 '사랑가'의 한 대목이 정겹게 흘러나오며 추억을 만들어 준다. 남원=글 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 -------------------------------------------------------------- [ 여행수첩 ] 정령치는 남원시내에서 주천면으로 길을 잡은 뒤 다시 지리산국립공원 표지판을 따라가면 도달할 수 있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어른 1천6백원,청소년 6백원,어린이 3백원. 남원의 대표 먹거리는 미꾸라지다. 1959년부터 대를 이어 맛을 전해 온 새집(063-625-2443)은 추어 숙회로 유명하다. 숙회는 1주일간 물갈이를 해준 깨끗한 미꾸라지에 마늘,고춧가루,들깨,간장 등을 넣고 쪄낸 낸 뒤 마무리로 달걀을 입혀준다. 해금내가 나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고기에 양념 맛이 스며들어 미각을 자극한다. 작은 접시 2만5천원.큰 접시 4만5천원.어린이와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미꾸라지 깻잎 말이,미꾸라지 녹두부침 등도 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