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노키아 휴대폰이 삼성전자 휴대폰과 충돌하면서 산산조각나는 만화와 함께 '노키아가 삼성의 도전에 직면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지난 80년대 중반 '리복'이 운동화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나이키'를 3년 만에 따라잡았듯 삼성이 1위 업체인 노키아를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칼럼이었다.


실제 삼성 휴대폰의 성장세는 놀라울 정도다.


삼성전자가 휴대폰을 본격적으로 수출한 것은 지난 98년.


그러나 불과 5년여 만인 지난해 삼성은 모토로라를 따라잡으며 휴대폰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2위 자리에 올랐다.


애니콜의 브랜드 가치도 98년 4억달러 수준에서 작년 30억달러로 성장하는 등 초고속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초기부터 고가 정책을 줄기차게 고수, '휴대폰 업계의 벤츠'라는 명성도 얻었다.


노키아나 모토로라보다 기술도, 인지도도 부족했던 삼성전자가 어떻게 이런 성공 신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해답은 가치혁신(VIㆍValue Innovation)에 있다.



삼성전자가 휴대폰 수출에 나섰을 당시 세계시장에서는 노키아 모토로라 소니 에릭슨 등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이 중ㆍ저가 시장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삼성은 초기부터 이들과 경쟁하지 않고 다른 길을 걸었다.


삼성은 새로운 시장을 찾기 위해 우선 휴대폰이 무엇을 하는 제품인지부터 고민했다.


그 결과 휴대폰을 단순한 통화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정보기기 간 커뮤니케이션을 해주는 도구'로 정의할 수 있었다.


제품에 대한 컨셉트가 달라지면서 경쟁사와 전혀 다른 전략 수립도 가능했다.


당시 외국 휴대폰 업체들은 경쟁사에 비해 얼마나 통화 품질을 높이고 원가를 줄이느냐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반면 삼성은 유선전화뿐만 아니라 편지, 햄(아마추어 무선통신), 팩시밀리, TV, 시계, 전자수첩, PDA(개인휴대단말기) 등 모든 정보ㆍ커뮤니케이션 기기를 휴대폰의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일례로 편지는 속도와 편리성은 떨어지지만 사랑의 감정을 전한다는 측면에서 휴대폰보다 훨씬 어필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기능성 제품으로 인식됐던 휴대폰을 감성적 제품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고민 덕분에 가능했다.


삼성은 또 디지털 기기의 컨버전스(융·복합화)가 가속화하면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휴대폰이 융합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확신했다.


가치혁신 이론의 창시자인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김위찬 교수도 최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삼성전자는 부드럽고 둥근 디자인, 넓은 화면, 멋진 컬러디스플레이, 실제 악기 소리처럼 들리는 벨소리 등 감성적 요소에 어필해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가치혁신 이론을 현장에 도입해 성공한 대표적 사례가 '이건희폰'으로 불리는 조약돌 모양의 휴대폰(모델명:SGH T-100)이다.


단일 모델로 1천만대가 팔리는 기록적 성공을 거둔 이 제품은 기획 단계부터 철저하게 가치혁신론을 활용했다.


당시 이 휴대폰 개발팀은 시장의 흐름을 고려한 결과 휴대폰의 고화질 컬러 액정화면이 언젠가는 대세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개발팀은 따라서 최고 화질을 구현하는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를 휴대폰에 달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휴대폰에 맞는 작은 사이즈 제품이 없었다.


또 TFT-LCD는 전력소모량이 많아 휴대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소비자가 원하면 기술적 문제등은 무조건 해결한다'는 가치혁신적 명제를 붙잡고 개발팀은 끝까지 매달렸다.


전력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필요할 때만 전원이 켜지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 휴대폰에 장착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마침내 TFT-LCD를 휴대폰에 부착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업계의 화두는 휴대폰 소형화 경쟁이었다.


경쟁 논리에 빠져 있던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은 모두 작고 가벼운 휴대폰을 만드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삼성은 가치혁신적 사고를 통해 이런 통념을 깼다.


휴대폰이 작아지면서 화면도 줄어들어 버튼을 누르는데 불편함을 겪는 소비자가 많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이에 따라 삼성은 이 모델에 '와이드&슬림(wide & slim)'이라는 개념을 처음 적용했다.


화면은 넓히고(와이드) 버튼은 사용하기 쉽게 키우되, 얇게(슬림) 디자인해 휴대하기 편하도록 만든 것이다.


개발팀은 가치혁신의 핵심 도구인 전략캔버스를 통해 소비자들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개발 및 상품화 등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핵심 수단으로 활용했다.


개발팀장이었던 신종균 전무는 "다른 경쟁자들이 기술적 문제 등을 극복하고 이런 모델을 개발하는데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자신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쟁사들은 10개월쯤 지나서야 TFT-LCD를 휴대폰에 부착하기 시작했다.


안테나가 휴대폰 안에 내장된 이른바 인테나(intenna)형 카메라폰(SPH-E3200)도 지난해 하반기 출시된 이래 올해 상반기까지 전세계에서 5백만대가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히트 제품이다.


이 제품 개발팀은 가치혁신 방법론에 따라 제거해야 할 요소(외부 안테나), 줄여야 할 요소(크기와 무게), 향상시켜야 할 요소(사용시간 멜로디 등), 창조해야 할 요소(인테나, 카메라 내장 등) 등을 찾아내 적용했다.


경쟁사들이 어떻게 하느냐보다는 소비자들이 무얼 원하는지에 더 집중한 가치혁신이 비싸도 잘 팔리는 초대형 히트 상품을 만들어낸 비결이라는 얘기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