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 제정된 이래 처음 시도된 대통령의 탄핵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선 탄핵은 정치적 대역전극의 절정이었다. 창당 당시 지지율이 20%에도 못미치던 열린우리당은 탄핵안 통과를 기점으로 부동층의 지지까지 받았다. 우리당은 여론조사 기준 지지율 제1당으로 부상했다. 또 탄핵은 우리 민주주의의 견고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서 십수만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방화 폭력 등 혼란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군의 정치 개입도 없었다. 1961년과 1979년은 반복되지 않았다. 권력공백도 일어나지 않았다. 국무총리로의 권한 이양,헌법재판소에 의한 탄핵심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안정 속의 정치실험,질서속의 정치격변이 가능했던 데에는 절대 다수의 안정 희구계층이 있기 때문이다. 안정 희구계층은 누구인가. 소득 기준으로 빈곤층과 부유층 사이의 중간계층을 포괄한다. 이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절대 빈곤층이 아니다. 쌓아놓은 부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절대 부유층도 아니다. 사회를 차라리 뒤집어보자는 식의 심리를 경계하고 어떻게 되든 나와는 상관없다는 식의 무신경을 두려워한다. 이들은 우리의 경제·사회 시스템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갖고 있다. 시스템 안에서 경제적 부와 가족의 행복이 증진될 수 있다는 믿음을 함께 한다. 따라서 시스템의 불안정과 붕괴 가능성을 경계한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 탄핵정국은 세가지 역설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변화를 추구한다고 자임하는 정치세력이 안정을 바라는 계층의 지지에 의존했다. 열린우리당이 지지율 기준 제1당이 되기까지는 점진적 변화와 안정을 원하는 시민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신세대와는 거리가 먼 40대가 손을 들어줬다. 적지 않은 수의 50대 이상 시민들도 야당들로부터 등을 돌렸다. 야당의 탄핵은 더 큰 불안정을 가져올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야당은 소속의원들의 표관리에는 성공했을지언정 국민들에게 표결 이후 안정적 국정운영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둘째,민주화 세력을 자임하는 정치세력이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에 의존했다. 안정희구 계층은 권위주의 정권기에 태동했다. 이들은 헌신적인 노력으로 지구상 최빈곤국가가 중진국의 대열에 올라서는 기적을 이뤄내도록 한 주인공이다. 동시에 이들은 경제 발전의 도상에서 시스템내에서의 자기실현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싹틔웠다. 근본적인 끼니 걱정을 면했고 꿈이었던 내구성 소비재를 구입하면서 생활의 질이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들은 우리 경제·사회를 불투명성 속으로 몰고 가려는 징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재신임 정국이나 탄핵 정국 모두 이같은 감성을 이해한 측과 이해하지 못한 측의 충돌이었고 승리는 보다 민감한 감성을 지닌 쪽이 모두 가져갔다. 셋째,가장 큰 정치적 수혜자가 안정희구 계층을 외면하고 있다. 안정희구계층의 숫자는 감소 일변도다. 절대빈곤층 숫자가 늘며 결손가정의 수도 증가했다.교육은 좌절을 확대 재생산했다.공교육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져 누가 더많은 사교육비를 대느냐에 따라 성적이 좌우되게 됐다. 경기부양과 실업난 해소란 이름으로 시행되는 정책들은 안정희구 계층의 상식을 위협했다.각종 구제책과 수혜정책은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고 쓴 만큼 갚아온 이들을 허탈하게 했다. 탄핵 이후 제시된 어떤 정책에서도 이런 추세를 되돌이켜 줄 비전을 찾기 어렵다.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키울 로드맵은 어디서도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여당을 자임하는 열린우리당이 총선 이후 경계해야할 일은 자명하다.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할 일은 정치적 보복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체제안정을 기원하는 계층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이들의 숫자를 줄이는 뺄셈정책을 멀리하고 늘리는 덧셈정책을 입안,집행해야 한다. 꺼져가는 성장엔진에 불을 지피고 급속하게 녹슬어가는 자기실현의 메커니즘에 기름칠을 해야한다.큰 빚을 져놓고도 나몰라라하는 정치적 신용불량자가 돼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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