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장품회사 로레알은 매년 'e-스트랫 챌린지'라는 행사를 연다. 전세계 대학생과 비즈니스 스쿨 재학생들이 실력을 견주는 비즈니스 게임 대회다. 경쟁은 온라인 시대답게 인터넷 상에서 이뤄진다. 참가자들은 가상 공간의 화장품 회사 CEO가 돼 5주간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회사를 직접 경영하게 된다. 올해 참가자는 3만명,1만개팀.한국 대학생들도 2백8개팀이 참가했다. 나름대로 탄탄한 실력을 갖췄다는 학생들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1백70개팀을 추리는 동북아 예선을 통과한 한국팀은 3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2백5개팀은 가상회사의 제품원가 판매량 재고 등을 묻는 단순한 일곱개 문제를 풀어내지 못했다. 영어는 물론 전공지식과 응용능력이 모두 부족했다는 게 주최측의 평가다. 실력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졌나 보다.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한국의 경제·경영학도들에게 창피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중국 대학생들의 '전과'가 예사롭지 않아서다. 중국은 1천1백58개팀이 신청서를 냈다. 처음에는 '인해전술' 정도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한국 일본 대만 학생들이 맥을 추지 못하는 사이 중국은 무려 1백33개팀이 예선을 통과해냈다. 중국팀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7개팀씩을 추린 MBA부문과 학부부문에 푸단대팀과 대외경제무역대학팀이 각각 이름을 올려 오는 5월 파리에서 벌어지는 최종 본선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3개팀은 모두 탈락했다. '3 대 1백33.' 이 결과를 한낱 컴퓨터 게임의 결과로 흘려버릴 수도 있다.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는 수많은 경제·경영학도들을 매도하는 숫자라고 외면해도 그만이다. 그러나 현상은 우리의 자위를 한심하게 만들 뿐이다. 후진타오 주석 등의 모교로 잘 알려진 칭화대는 밤 11시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한국 대학의 도서관도 밤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다고? 그게 아니다. 칭화대에서 밤 늦게 불을 켜 놓고 있는 곳은 강의실이다. 그것도 정규 수업시간. 칭화대 인근의 우다커우라는 지역은 서울의 신촌과 같은 유흥가. 하지만 이곳을 찾는 중국 학생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유학생들이 주점들을 가득 메우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창궐하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피해 한국 학생들이 귀국길에 오르자 이곳이 완전 철시 분위기였다니 한국 학생들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대기업 중국본사를 책임지고 있는 한 기업인은 중국 내 한국 유학생이 4만명을 육박하지만 이들을 채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한국어가 필요하면 차라리 조선족 학생을 채용한다는 것.그만큼 한국 대학생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사실 캠퍼스를 떠나지 않는 중국 대학생들과 우다커우의 한국 유학생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대기업 채용 담당자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더 답답하다. 청년 실업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뽑아서 쓸만한 인재가 없다는 것.토익 9백점을 넘어봐야 실전 영어는 엉망이고 당장 써먹어야 하는 전공지식과 응용능력은 사실상 낙제점이다. 게다가 대기업을 지원하는 학생들의 머리속은 반기업 정서로 꽉 차있다. 결국 이들에게 거액을 들여 다시 대학교육을 시켜야 하는 기업들만 골탕을 먹을 뿐이다. 전공은 접어둔채 고시 공부와 입사시험 준비에만 매달리는 학생과 섣부른 현실참여에 홍역을 앓고 있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기업들이 중국으로 몰려나가면서 이제 대기업의 채용에도 공동화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는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지.답답할 따름이다.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