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빚을 진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이 8년간 빚을 갚으면 나머지 빚은 모두 면제해주기로 한 것은 경제에 큰 짐이 되고 있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책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당연히 갚아야 할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길을 공식적으로 열어줬다는 점에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더욱 조장할 것이란 우려를 감추기 어렵다. 이 제도의 적용을 받으려면 고정수입이 있어야 하고 채무상환계획을 법원에 제출해 '성실히 갚을 의지가 있는지'여부를 심사받아야 하는 등의 전제 조건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일부나마 상환받는 것이 빌려준 돈을 아예 받지 못하는 것보다 나은 경우가 있을 것 또한 틀림없다. 하지만 갚을 수 있는 빚만 갚고 나머지는 탕감해준다면 과연 누가 제대로 빚을 갚으려 할 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신용불량자만도 3백80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형편인데 빚을 진 사람들이 대거 상환을 기피한다면 그 파장이 어떠할 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빚 탕감설이 흘러나오면서 야기된 부작용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LG카드 사태만 해도 빚 탕감설이 나온 탓에 상황이 더욱 악화됐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남의 돈을 빌렸으면 8년이 아니라 80년이 걸리더라도 당연히 갚아야 한다. 계약을 준수하는 것은 사회 질서 유지의 기본조건이기도 하다. 때문에 제도를 도입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이를 적용하는 것은 정말 불가피한 최소한의 경우로 한정시켜야 마땅하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정부가 나서 모럴 해저드를 부추기기 보다는 금융기관이 주체가 돼 채무재조정이나 채권회수계획을 짜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본다. 일부 은행이 채무자 일자리 찾아주기 운동을 벌이는 것은 그런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특히 신용불량자의 절반이 1천만원 이하 채무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방법은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