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경제를 뒤흔든 'SK사태'의 혼란기를틈탄 소버린 자산운용의 지분매집으로 촉발된 SK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국내 경제에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소버린이 3월 정기주총에서 승리해 재계 3위인 SK그룹의 지주회사격인 SK㈜의이사회를 장악할 경우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외국인에 의해 적대적으로 인수.합병(M&A)되는 첫 사례가 된다. 외국계 펀드에 의한 이같은 적대적 M&A 움직임은 외환위기 이후 국내 경제계에주도적 가치로 떠오른 주주중심 자본주의(Shareholer Capitalism)의 효용성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면서 지배구조 논란을 촉발시키고 있다. ◆SK그룹의 경영권 향배는 = SK그룹의 운명을 결정할 SK㈜의 정기주총이 오는 3월12일 열린다. 소버린은 최 회장과 손길승 회장, 김창근 사장 등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SK㈜ 핵심경영진 3명에 대한 퇴출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임기가 만료되는 6명 이사 후임으로 조동성 서울대 교수 등 사내외 이사 5명을 추천해놓은 상태다. 방어하는 입장인 SK㈜도 사외이사수 과반수 이상 등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개선 로드맵을 발표하는 한편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을 만나 입장을 설명하고 지지를 요청하는 등 주총 표대결에 대비한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현재 SK㈜ 지분율은 최 회장과 SK계열사, 우호적 기관투자가 등을 합쳐 SK측 우호지분이 38% 가량이며 소버린은 템플턴과 헤르메스 자산운용을 포함, 20.7%의 우호지분을 확보한 상태여서 일단 SK측이 유리한 상황이다. 다만 22.8%에 달하는 기타 외국인 지분 및 30.3%에 이르는 국내 기관투자가와소액주주 지분의 향방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 소버린이 SK㈜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20여개 외국계 금융기관을 상대로 18%에 달하는 우호지분을 확보했다는 소문도 있어 사실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종증권 유영국 연구원은 "일단 이번 정기주총에서는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SK가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며 "외국인 지분율이 갈수록늘어나고 있어 최 회장의 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정기주총에서는 경영권 사수가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주주자본주의 논쟁 촉발 = 불과 1천700여억원을 투자해 자산 50조원과 계열사59개를 거느린 SK그룹을 뒤흔들고 있는 소버린의 행보는 주주자본주의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소버린은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이며 자본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불법행위를 저질러 회사와 주주가치를 훼손한 SK㈜ 경영진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소버린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적잖은 비판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진보적 소장학자들이 주축이 된 '대안정책연대회의' 등은 소버린이 주장하는 주주중심 자본주의에 대해 "월가의 투자가들이 제3세계에서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퍼뜨린 논리"라고 비판한다. 대안연대 정책위원인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주주는 결코 기업의 책임있는 소유주가 아니며 금융자본의 성격이 농후한 단견의 주주들이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기업지배구조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기업의 이익은 모름지기 중장기적 경쟁력의 확충과 일자리의 유지및 창출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하는데도 소버린과 같은 금융자본은 이익의 극대화와 위험분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주주중심 자본주의와 대비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를주창하는 학자들은 주주이익이 사회의 이익과 일치한다는 보장이 없고 지나친 주주가치 신봉은 분배의 기능에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기업의 주인을 '주주'라고 보는 소버린과 같은 입장에서는 경영자의 주된역할은 경영을 잘해 주가를 올려 주주의 부를 늘리는 것이라고 본다. ◆문제점과 대안 = 소버린의 주식매집으로 촉발된 SK 경영권 위기의 근본원인은국내 재벌시스템의 낙후성에 있다. 오너가 소수의 지분으로 50-60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취약한 지배구조와 언제든 SK와 같은 위험에 봉착할 수 있는 불투명한 회계관행 등이 사실상 오늘의 사태를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SK만의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SK 최고경영진이 불법행위를 저질러 사법처리되고 주가가 폭락하지 않았더라면 소버린이 치고 들어올 만한 허점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경영권 위기상황도 없었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주요산업에 대부분 침투해있는 외국계 자본에 대한 가치정립도 문제다. 주주중심 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중 어느 쪽이 우리 실정에 더 맞느냐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우선된 뒤 낙후된 재벌시스템을 개혁하고 회계관행과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어야 SK와 같은 문제를 막을 수 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은 "먼저 불투명한 회계관행과정경유착 등 낙후된 재벌시스템에 대한 개혁이 이뤄진 뒤 우리 실정에 맞는 이론을접목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 열기자 passion@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