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새해 들어 경제 챙기기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기업인들을 만나 투자를 늘려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고 중소기업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듣기도 했다. "경제를 위해 개인적으로 가졌던 생각 중에 버릴 것은 버리고 바꿀 것은 바꿨다"는 말도 했다. '경제시국선언'까지 등장한 지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경제 활력을 북돋우겠다는 말씀이 무얼 뜻하는지 헷갈린다. 무얼 버리고 무얼 바꿨는지도 궁금하다. 대통령을 봐도 그렇고 대통령 주변을 봐도 그렇다. 정책이 불확실해 투자가 안된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불확실하냐고 대통령은 반문했다. 그렇다면 불확실성의 근원을 모른 채 투자를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는 말이 된다. 말꼬리를 잡아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억울한 점도 있을 게다. 오죽했으면 신문사 경제부장들에게 "반시장정책을 한 마디도 얘기한 적이 없다"고 했을까. 그러나 불확실한 게 없는 데도 기업인들이 생떼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불확실성의 근원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올바른 처방을 내놓기도 어렵다고 본다. 따지고 보면 기업 환경이란 시대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항상 불확실하다. 기업인들이 투자를 꺼리는 것은 불확실성의 정도가 여느 때보다 심하다는 뜻이다. 총선이 있는 올해는 더욱 그렇다. 정치에 '올인'하는 판국에 뭐가 확실하다는 말인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최근 여권 인사들을 총선에 총동원하겠다는 '올인 전략'을 밝혔다. 청와대에서는 문희상 비서실장을 비롯해 비서진이 나서야 하고 김진표 경제부총리,강금실 법무장관 등도 나서야 한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나돌던 얘기라 놀랄 것은 없다. '꼬마 여당' 의장으로서 할 수 있는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인 입장에서 보면 예사롭지 않다. 대통령이 경제 챙기기에 앞장선다고 해도 경제 최우선 정책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통령 측근 비리 청문회가 임박했고 총선 결과에 따라 정치판이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다. 조금만 참아 달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경제에는 더 이상 참고 견딜 여력이 없다. 총선은 이미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 정부 부처는 요즘 선심성 정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공무원 채용 인원을 대폭 늘리는 방안,60세 정년을 의무화하는 방안,여성 근로자의 육아휴직 급여를 임금의 40%로 늘리는 방안 등이 나왔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은 공공부문 채용의 3%를 청년실업자로 못박는 특별법을 발의했다. "우리 경제가 뭐가 잘못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출이 잘돼 지난해 1백55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는데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소비와 투자만 살아나면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무역흑자도 반길 일만은 아니다. 우리 상품의 경쟁력이 좋아졌다기보다 소비와 투자가 부진해 수입이 줄어든 결과이기 때문이다. 적자를 내더라도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는 게 낫다. 그래야 일자리도 생긴다. 투자를 안하면 성장잠재력은 약해진다. 더 큰 문제는 제조업 투자가 부진하고 투자를 해도 주로 해외에 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14년 장기불황이 시작되기 직전의 일본 경제를 닮았다. 당시 일본 언론은 제조업 공동화 문제,정치권의 리더십 부재를 지적했고 소비가 살아날 것이라는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다. 정부와 정치권은 경제학자들의 '경제시국선언'을 가벼이 여겨선 안된다. 일본이 무역흑자를 내지 못해 장기불황에 빠졌던 것은 아니다.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