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일자리를 만들자고 호소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때 늦었다 할 정도다. '친노(親勞)' 논란이 그치지 않았고 정치투쟁으로 날을 새웠던 지난 1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일자리가 곧 복지'라는 엊그제 연두회견을 듣노라면 이제 참여정부도 아마추어 명분주의를 버리고 경제우선 실리주의로 전환했구나 하는 안도감마저 갖게 된다. 그런데 무언가 찜찜한 것이 사실이다. 마음 구석에는 "웬일이지…." 하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다. 혹여 총선을 앞둔 또 하나의 득표 캠페인인가 하는 우려조차 적지 않다. 불행히도 이 같은 의구심이 풀리는 데 하루면 충분했다. "공공부문에서 8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어제 김진표 부총리의 발언을 접하면서 "그러면 그렇지"라며 쓴웃음을 짓게 된다. 문화재 데이터베이스 구축 인력을 보강하며,연금공단 상담사 등을 대졸자들로 보충하면 대략 8만명 정도는 취업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부총리의 설명을 듣다 보면 일자리가 이렇게도 편리하게 만들어지는 것을 왜 지금껏 몰랐던가를 개탄해야 할 지경이다. 사실 이런 상황을 염려했기 때문에 한국경제신문은 어제 '일자리를 만들자'는 기획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일자리 창출도 시장원리로'라는 대원칙을 전면에 내세웠다. 취업자 숫자 채우기로 따지자면 실업률은 3%가 아니라 0%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고 40만명이 아니라 1백만명인들 취직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작년에 불어난 실업자 수가 공교롭게도 7만명이고 보면 김 부총리의 8만명 공공부문 채용론에 가벼운 분노마저 느끼게 된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공기업들이 채용을 늘리도록 요청하겠다"고 입을 맞추고 있는 것을 보면 열린우리당의 정강정책은 들여다 보지 않아도 알 만하다. 그것은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멀며 나누어 먹기의 설익은 분배론에 다름아님을 알게 된다. 더구나 민간기업 CEO들을 불러다 놓고 채용목표를 주고 윽박질러 할당량 채우기를 독려한다면 지금과 같이 '걸면 걸리게 되어 있는' 시국에 누구라서 거부할 것인가. 걸려들 일 또한 도처에 널려 있지 않은가 말이다. 19일 청와대에서 열릴 예정인 전경련 회장단과 대통령의 회동이 바로 이런 모양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청년실업자를 구제하고 일자리를 창출하자고 한 목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겠지만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이 내심은 또 얼마나 동상이몽일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한 쪽은 경영실적이 좋은 대기업부터 나누어 갖자고 주장할 터이고 다른 쪽은 정부 규제를 풀고 친기업 정책을 펴면서 민간경제의 활력을 북돋워주기를 강조할 터이니 서로가 같은 단어(일자리)를 놓고 동문서답하는 상황이 되고 말 것이 뻔하다. 한 쪽은 일자리 '나누기'를 주창하고 다른 쪽은 일자리 '만들기'를 요구한다고 보겠지만 이 둘의 차이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청와대는 유한킴벌리의 '나누기'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지만 3교대니 4교대 같은 일은 처음부터 청와대의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며 더구나 1년 내내 대기업 노조에 끌려다닌 정부가 근무제도를 뒤바꾸는 이 새로운 아젠다에서 적절하게 노동세력을 통제할 것이라고 믿을 수는 없다. '나누기'의 결과가 어떻다는 것은 오늘날 두자리 실업률의 유럽뿐만 아니라 과거 사회주의 경제권의 몰락이 웅변하는 그대로다. 그것은 차라리 경제를 죽이는 것이며 장래의 일자리를 질식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참여정부는 도대체 목표만 있을 뿐 방법론은 생각조차 않는다는 말인가….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