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만큼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것도 많지 않다. '높은 자리'에만 오르면 누구나 금방 갖출 수 있는 게 리더십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풍조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스포츠 경기 하나만 봐도 리더십의 중요성은 쉽게 알 수 있다.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똑 같은 선수들로 이뤄진 팀이 최강팀이 되기도 하고 오합지졸로 변하기도 한다. 지난 한 해는 우리 사회의 리더십이 붕괴된 시기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1년차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도 자주 개탄할 정도로 '영(令)'이 서지 않았다. 대통령이 이랬다면 국무총리나 장관 정도는 말할 것도 없다. 기업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내로라하는 경영자들이 검찰에 불려 다니면서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를 낮춘 만큼 사업하는 모양새도 소극적이었다. 사정이 괜찮은 기업들도 이쪽저쪽 눈치보느라 투자나 신규 사업엔 눈을 감았다. 경기 회복에 대비해 모험을 거는 '투자 리더십'을 발휘하는 업계 선도 기업을 찾기 어려웠다. '어른다움'을 뜻하는 리더십의 부재는 사회 곳곳에 악영향을 미쳤다. 무책임의 극치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들이 어느 해보다 많았다. 승객들을 독가스 속에 내버려둔 채 혼자 도망친 지하철 기관사,아이들을 옥상에서 내던진 비정한 엄마,한강물에 자식을 버린 무자비한 아빠….일터의 윤리,가족애 등 작은 리더십마저 온전히 살아남기 어려웠던 한 해였다. 이런 판국이니 부지런히 일해도 가계 사정이 쉬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는 청년들이 늘어만 갔다. 감독들이 흔들리다 보니 웬만한 노력을 기울여도 '선수'들은 오합지졸 신세를 면치 못한 셈이다. 리더십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연결된 사슬의 한 고리와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리더에겐 폴로어(follower:추종자)가 되고,또 자신의 추종자에겐 리더가 된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맨 위쪽의 리더십이 조금만 흔들려도 맨 마지막 추종자까지 불안에 떠는 일이 생긴다. 새해를 맞으며 노 대통령의 리더십 회복이 가장 급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노 대통령이 리더십을 되살리는 일은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찬찬히 리더십이란 개념을 한번 들여다보면 어디에 구멍이 나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리더십에는 세 가지 필수요건이 있다. 우선 따르는 사람,즉 추종자가 있어야 한다. 두번째로는 추종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끝으로 리더와 추종자로 이뤄진 집단의 목표가 전체 사회나 조직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기초 개념으로만 봐도 노 대통령의 문제는 나라의 리더가 아니라 특정 정파나 지지자들의 리더를 자임했다는 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추종자 그룹을 지나치게 좁혔다는 얘기다. 노사모 회원들에게 시민혁명을 일으키자고 했을 때 비(非)노사모들은 그 시민혁명의 대상이 될 뿐이다. 국민들이 거부할 수 없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면 실행 방법론에 이의가 있더라도 리더십은 생긴다. 그 목표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을 추종자로 끌어안을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북한을 돕는 방법에 논란이 있었을 뿐 남북화해무드 조성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반발하는 사람은 적었다. 노 대통령이 더 많은 추종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목표를 내세우고 그것을 대의명분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면 리더십은 쉽게 회복될 수 있다. 그 목표가 어떤 것이어야 할지를 찾는 것은 리더의 몫이다. 대통령이 리더십을 빨리 회복해 사회 전체가 '이기는' 게임을 뛰고 있는 선수들처럼 흥분할 수 있는 새해를 기대해 본다. 전문위원 겸 한경STYLE 편집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