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은 프로도를 도와 절대반지를 없앤 샘이 고향에 돌아와 결혼,아내 딸 아들과 함께 집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가족'이란 주제에 매달리는 미국영화의 공식을 답습한 셈이다. 할리우드가 '가족'에 집착하는 건 높은 이혼율에 대한 반작용처럼 보인다. 대중문화의 힘을 이용해 가족 해체를 막아보려는 노력이라고나 할까. 국내의 결혼 대비 이혼율이 47.4%이고 곧 50%를 넘을지도 모른다고 야단이다. 게다가 이대로 가면 미국보다도 높아져 세계 최고 이혼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보건복지부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관계 연구보고서').여기서 47.4%란 지난해 30만6천쌍이 결혼하고 14만5천쌍이 이혼한 걸 기준으로 한 수치다. 이는 그러나 작년에 웨딩마치를 울린 30만6천쌍중 14만5천쌍이 헤어졌다는 게 아니고 이미 결혼해 살던 전체 부부중 14만5천쌍이 갈라섰다는 의미다. 인구 1천명당 이혼 건수를 나타내는 조이혼율은 지난해 처음 3.0건을 넘었다. 92년 1.2건에서 급증한 게 사실이지만 결혼한 부부의 절반이 이혼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통계의 파장은 간단하지 않다. '결혼 대비'라는 전제가 있어도 이혼율 50%라는 식의 해석이나 보도는 마치 이 땅 부부 둘 중 하나가 돌아선다는 식의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경각심을 일으키려는 것일 수 있지만 거꾸로 이혼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숫자는 사회 통념이나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이혼율 50%'는 "남들도 다 한다" 는 식의 생각을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도리 없는 경우가 있을 테지만 이혼에 따른 가족해체는 당사자와 자녀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와 연관될 소지도 높다. TV드라마에선 헤어져도 아이만은 서로 키우겠다고 싸우지만 현실에선 아무도 안 맡으려 하고 심지어 각기 재혼하려고 아이를 외국에 보내기도 한다는 마당이다. 이혼의 이유는 다양하고 자꾸 늘어나는 까닭 또한 꼬집어 설명하기 힘들다. 그렇더라도 기혼남녀의 바람을 당연시하거나 이혼을 '쿨하다'고 주장하는 분위기,이혼율의 지나친 확대 해석 등은 경계할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