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한국을 위해 복무하다 잡혔습니다." 혈기왕성했던 스무살 청년 전용일이 고희를 훌쩍 넘긴 백발 성성한 노인이 돼 크리스마스 이브에 돌아왔다. 세월 탓인지 말씨도 어느덧 북한 사투리로 바뀌어 있었다. 6.25 전쟁중이던 지난 1951년 국군에 징집당한 전씨는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53년7월 포로로 잡혀 50년간 북에 억류돼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귀환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국을 위해 복무하다 잡혔다"고 한 다음 "중국에 억류됐을 때도 반드시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의지를 꺾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는데 우리 정부에 대한 섭섭함이 배어 있는 듯했다. 전씨가 한국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6월 탈북에 성공한 그가 9월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았을 때만 해도 곧 꿈에도 그리던 남쪽 가족을 만나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전씨의 이름을 국군 포로명단에서 찾지 못한 국방부와 외교부 등 정부 당국자들의 무성의와 실수로 전씨는 50년 '수구초심'을 이루기는커녕 북으로 강제 송환될 위기에까지 내몰렸었다. 전씨는 미온적인 정부의 태도에 기다리다 지쳐 독자 입국을 시도했고 지난 11월 항저우공항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돼 투먼의 한 탈북자 수용소에서 40여일간 억류돼 있었다. 항저우공항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을 때 그는 아마 50년 전 북한군에 잡혔을 때보다 더 깊은 좌절감을 맛봤을지도 모른다. 수용소에서의 40여일은 지난 50년의 세월보다 더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비록 국내외 비난 여론에 떠밀려서였지만 우리 정부가 중국 정부의 협조를 얻어 전씨의 한국행을 성사시킨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내년 봄이면 우리 장병 3천명이 나라의 부름을 받고 테러 위협 등으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이라크로 떠나게 된다. 국방부는 전씨가 귀환하던 날 파병 장병들이 착용할 방탄조끼 등 첨단 장비들을 공개했다. 정부 당국은 우리 젊은 장병들이 노병 전씨의 귀환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곰곰이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아마 장병들이 국가에 원하는 것은 총알을 막아줄 장비가 아니라 나라가 자신들을 끝까지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인지도 모르겠다. 김수찬 사회부 기자 ksc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