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4대 기서(奇書)중 하나로 꼽히는 서유기에는 여의봉을 들고 구름을 타는 원숭이 손오공이 나온다. 손오공은 불경을 구하러 서역으로 10여만리 길을 떠나는 삼장법사를 호위하면서 그를 위협하는 수많은 요괴들과 싸우고 온갖 역경을 헤쳐 나간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탁월한 둔갑술을 보이는가 하면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 무수한 원숭이를 복제하는 신통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천리 밖의 잠자리를 보는 화안금정(火眼金睛)을 가졌다. 중국이 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마스코트로 손오공을 채택한 것도 바로 이런 매력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민속에서도 잔나비라고 하는 원숭이는 장난꾸러기이긴 하지만 재주가 많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고 있다. 천도복숭아를 든 원숭이는 장수를 나타내고 사람 못지않게 새끼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 모성애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원숭이를 재수없는 동물이라 해서 경멸하는 민족들도 있긴 하다. 새해는 갑신년(甲申年) '원숭이'해다. 원숭이해에는 대체로 격변과 혼란스런 일들이 벌어졌다고 역술인들은 말한다. 1백20년 전인 1884년 개혁의 기치를 내건 개화파들의 갑신정변은 '3일 천하'로 끝났고,60년 전 1944년에는 일제의 막바지 식민통치가 더욱 극성스러웠다. 갑신년은 아니지만 1980년의 신군부 등장도 원숭이 해였다. 내년 역시 혼란스러운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점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모양인데 지금의 상황으로만 본다면 그런 우려가 기우만은 아닌 것 같다. 갑신년의 갑(甲)은 새로운 시작이고 계절적으로는 가을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뜻풀이로 보면 내년 총선을 계기로 기존의 정치문화가 새롭게 형성되고,경제적으로는 침체된 경기가 되살아나 내수·수출이 활기를 띠면서 개인이나 기업 모두가 풍요로운 수확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부디 갑신년 새해에는 모두가 시름을 떨쳐버리고 원숭이 손오공처럼 강인한 정신과 총명한 머리,그리고 낙천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