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여느때처럼 지각하게 될 듯하여 나는 서둘러 들판을 가로질러 학교로 갔다. 늘상 왁자지껄했던 교실이 오늘만은 조용했다. 선생님에게 꾸중 듣는 것이나 아닐까 하여 겁먹은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다. 그러나 선생님은 뜻밖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서 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셨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의 한 구절이다. 알자스와 로렌의 귀속문제로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알자스에 사는 소년 프란츠에겐 공부보다 들판에서 뛰어노는게 훨씬 즐거웠다. 하지만 아멜 선생님으로부터 제대로 글도 배우지 못한 사이에 나라가 망해 프랑스어를 배울 수 없게 되다니….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진다. 연말을 맞는 중소기업인들의 심정은 아멜 선생님보다 더 서글프다. 땀흘려 기업을 경영했지만 결과는 참담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70%를 밑돌고 있는 중소제조업체의 평균 공장가동률은 기계 3대중 1대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도 공장을 돌릴 수 있는 기업인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올 들어 부도를 낸 기업은 약 5천개에 달한다. 창업기업이 부도기업보다 대여섯배 많다곤 하지만 직원 서너명을 둔 신설업체와 1백∼2백명을 두고 수십년간 사업을 해오다 쓰러진 기업을 업체 숫자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소기업인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만드는 것은 어렵게 일감을 구해와도 현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섬유 의류 제지 염색 도금 열처리 주물업체들이 그렇다. 방글라데시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에 의해 공장이 돌아가게 된 지 오래됐다. 이들 중 11만명은 불법체류자다. 내년초부터는 일을 시키고 싶어도 내보내야 한다. 그와 동시에 기계를 세워야 하는 기업이 즐비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인의 마음이 우울한 것은 이 때문만이 아니다. 제품을 팔기도 힘들지만 어렵게 납품해도 자금 회수에 평균 5개월이나 걸린다. 지금 팔면 벚꽃이 눈처럼 흩날린 뒤인 내년 초여름에야 돈을 받을 수 있다. 일부 모기업들은 원가 절감을 이유로 사정없이 납품단가를 후려친다. 이처럼 상황이 절박한데도 요즘 중소기업인들은 이상할 정도로 침묵하고 있다. 사람 구해 달라,자금지원해 달라,각종 규제 풀어 달라고 목청을 높여도 시원치 않을 것 같은데. 서울 변두리에서 30년이상 제조업을 해온 칠순의 중소기업 사장은 수주를 위해 수십번 일본을 드나들었건만 아침식사 포함해 5천엔이 넘는 여관에선 단 한번도 자본 적이 없다. 자가용조차 없어 지금도 전철을 갈아타며 출근한다. 빚 없이 알뜰히 경영해 자기 회사를 해당 분야 최고의 기술력 있는 업체로 키웠건만 그 역시 경영이 너무 어려워 밤잠을 설칠 지경이라고 토로한다. 그는 요즘 중소기업인의 침묵의 변을 이렇게 설명한다. "해도 해도 안되니까 체념 단계에 들어간 거야"라고. 내년이 걱정이다. 그나마 버티던 '불쌍한'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입에서 아멜 선생님의 힘 잃은 마지막 체념의 말씀이 줄지어 튀어나올지 모른다. 중소기업에서 일해 보겠다고 뒤늦게 찾아온 청년실업자들을 향해,납품 단가를 더이상 무자비하게 깎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모기업 관계자들에게,이제부터라도 인력문제를 풀어주고 각종 규제를 완화해 주겠다고 밝히는 정부당국자들을 향해…. "다 끝났습니다. 모두 돌아가십시오."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