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엊그제 작년 대선이 '뻘밭싸움'이었다고 술회했지만, 지금도 작년 대선 못지않은 '뻘밭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아니면 '진흙탕싸움'이라고 해야 옳을까.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불법 자금보다 10분의 1 이상 많다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발언하자 이회창 후보는 불법 대선자금에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겠다고 응수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비장함에는 또 다른 결연함으로, 공격에는 역공으로 대응하는 '핑퐁식 정치'에서 누구도 한방씩 날릴 만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지금처럼 실감하는 상황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조차 불법 선거자금과 관련해 문제가 있으면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자원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치는 과거에 비해 한 단계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답답함을 느끼고 한국 정치의 수준에 대해 자조하게 되는가. 두 말할 나위없이 정치적 다툼의 질이 저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가 언제나 화합과 조화를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정치는 오히려 압제나 독재정치의 산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정치는 긴장과 갈등, 다툼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적지않다. 또 민주정치나 정당정치는 다툼을 제도화하는 정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싸움의 아젠다가 과거의 일이라는 데 있다. 우리는 왜 미래를 위한 다툼,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고뇌, 정치의 품위를 한 수준 높이겠다는 건설적인 다툼을 하지 못하고 상대방보다 10분의 1정도 잘못했는지, 그 이상으로 잘못했는지 하며 소모전을 벌이고 있는 것인가. 과거를 위해 대통령직이나 정치생명도 걸겠다는 싸움이 과연 생산적인 싸움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싸움에 '필사즉생'의 각오로 임한다고 해도 '콩깍지'같은 결과 이외에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기껏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정략적 싸움이라면 너무나 얄팍하다. 왜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고 과거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시간을 나타내는 순수 우리말을 보면 '그제' '어제' '오늘' '모레' '글피' 등 수두룩하다. 그런데 딱 하나가 빠져있는데, 그게 바로 '내일'이다. '내일(來日)'은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어제' '오늘'이 우리말이었다면 '내일'을 나타내는 순수 우리말이 틀림없이 있었을텐데, 우리는 그만 그 말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문제는 잃어버린 것이 '내일'을 나타내는 용어 자체가 아니라 '내일'에 깃들어 있는 정신과 비전 전체를 잃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미래형 화두'는 없고 '과거형 화두'에만 몰두하고 있는 지금의 정치 상황이 바로 이 사실을 입증한다. 정치인 개개인은 과거의 실적에 따라 명멸할 수 있겠지만, 정치는 미래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과거를 들춰내더라도 미래를 위해서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터인데, 지금은 정적을 죽이기 위한 것이라는 살벌함이 느껴진다. 불법 선거자금이 우리의 오랜 정치관행이었고 이점에 있어 정치적 승자나 패자나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검찰이 발표할 때마다 마치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실이 밝혀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걸 보면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닐 수 없다. 노 캠프건 이 캠프건 상당액수의 불법 정치자금을 쓴 걸 삼척동자도 짐작하고 있는 사실인데, 마치 못볼 것을 본 것처럼 난리를 치는 것은 위선이 아닌가. 그런 태도로 어떻게 정치개혁을 이루고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정말로 미래를 설계하고자 한다면 과거의 잘못에 대해 공동으로 참해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을 흠집내어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도록 해야겠다는 편협한 마음으로 가득차 있으니 미래가 없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여야는 정치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반추해야할 때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과 같은 '핑퐁정치'로 총선까지 간다면 나라는 거덜날 수밖에 없다. 나라가 거덜난 후 정치에서의 승자와 패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