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의 특징적인 현상 중 하나가 그 어느 때보다 '보수'와 '진보'라는 두 단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진보'는 정치개혁세력이고, '보수'는 변화를 싫어하는 수구세력쯤으로 간주해 버리는 등,일명 '진보'라는 단어가 참신한 의미로 국민들에게 이해되고 있기도 하다. 보수와 진보라는 의미가 경제 분야로 오면 더욱 혼란스럽다. 자본주의 시장원리를 주장하는 시장론자는 '보수'로,공익성과 정부개입을 강조하면 '진보'로 불린다. '진보'라는 의미가 좋은 의미로 강조되어서 그런지 최근 경제에 대한 정부개입은 더욱 커지는 듯하다. 하지만 과다한 규제는 시장에서의 부작용을 유발한다. 이러한 역효과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규제가 필요하게 되고 경제의 효율성은 떨어질 수 있다. 대기업 정책만 살펴봐도 그렇다. 경제력 집중에서 오는 불완전 경쟁이라는 시장실패를 치유하고,기업회계의 투명성을 강조하고,상속세의 탈루를 막겠다는 대기업 정책에 대해서 반대하는 경제 전문가는 없다. 하지만 수많은 개별법으로 구성된 땜질식 중복 규제나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대기업 관련 국정과제를 살펴보면 시장에서의 부작용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출자총액제한 강화 규제는 자본시장 개방 하에는 인수·합병 시장에서의 국내기업 역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 나아가 기타 지배구조에 관한 규제도 위험분산의 차원에서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정부가 일률적으로 강제하면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을 수 있다. 특히 기업의 사업 활동과 관련되는 사업구조와 재무구조에 관한 사항은 기업 스스로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평가는 시장이 하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 규제정책도 마찬가지다. 주택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논리에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주택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목적으로 추진 중인 각종 규제 및 정부정책을 살펴보면 시장에서 의도하지 않은 현상을 우려할 수도 있다. 주택 가격의 상승은 간단히 설명하여 수요와 공급의 차이다. 주택 수요를 줄이고 중고 주택의 매물을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 근시안적인 최근 부동산 규제 및 조세 정책은 시장에서 신규주택의 공급을 줄일 수가 있다. 신규주택의 공급이 줄어들면 2년 후, 3년 후 시장에서는 현재의 주택가격 안정화 정책이 반대로 주택 가격을 불안정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2년 전 내수경기 부양책이 예측하지 못했던 경제 변수들과 맞물려 현재의 주택 가격 폭등에 한 몫을 한 것을 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서울 강남 지역의 주택 가격 상승은 강남과 유사한 주거환경을 가진 지역을 공급하지 못한 시장원리에 있다는 진리를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외환위기 직후 1998년 김대중 정부는 각종 규제가 기업 경쟁력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외환위기 조기 극복에 장애가 된다는 판단 하에 대폭적인 규제완화를 위한 규제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뿐만 아니라 경제 자유화 수준과 국가 경쟁력을 세계 10위권으로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미국 헤리티지 재단에서 발표하는 경제자유지수 국가 순위를 보면 한국은 작년 기준으로 52위를 마크하고 있다. 특히 2001년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증가 건수는 80여건으로 노동부 다음의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98년 기준으로는 등록 규제 수가 1백10% 이상 증가했다. 규제가 많아지고 정부정책이 일관성 없이 변화하면 기업은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투자를 줄이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고용도 줄어들게 된다. 내년 경기 전망도 그리 밝지만은 않다. 정부는 직접 규제를 과감히 줄이고 기업들이 경쟁 환경과 시장변화에 따라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변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경제분야에서의 '보수' '진보' 논쟁은 무의미하다. 다만 '시장보다 강한 정부 없다'는 경제의 기초 법칙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볼 시점이다. sjkwak@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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