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고에서 2백억달러를 인출해 '한국투자공사'(KIC)를 설립한 뒤 연ㆍ기금 외화자산까지 통합운용한다는 정부안에 한국은행이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서 찬반논란이 뜨겁다. 청와대 동북아경제위원회는 KIC를 국제수준의 전문투자기관으로 육성할 경우, 국내 자산운용업의 활성화는 물론 동북아 금융중심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외환보유고가 1천5백억달러를 넘어 지나치게 많으며, 미 재무부채권 등 안전자산 위주로 운용돼 상대적으로 투자수익률이 낮은 점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두가지 점에서 KIC 설립 추진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우선 외환보유고 전체를 잉여자산으로 혼동해선 곤란하다.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들어온 것이건 수출을 해서 벌었건, 외화자산에 상응하는 금액의 부채가 있게 마련이며 잉여자산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특히 부채는 확정금액인데 비해 운용수익은 불확실한 특성을 감안하면, 자산운용능력마저 크게 부족한 판에 외환보유고를 헐어 해외투자에 나선다는 건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또한 국내 외환시장 규모를 키워 동북아 금융중심으로 도약한다는 구상도 성급하긴 마찬가지다. 원래 금융업의 글로벌화는 규제완화나 전문인력 양성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먼저 실물경제가 세계화되고 오랜 세월 동안 전세계에 걸쳐 금융정보 네트워크를 다져야 한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몇몇 나라만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며, 세계 최대의 외화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제일의 제조업 경쟁력을 자랑하는 일본도 장기적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형편이다. 더구나 동북아 경제중심의 내용이 물류냐 금융이냐에 대해서도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금융중심 도약을 내세워 KIC 설립을 강행하려는 까닭을 모르겠다. 금융당국은 외환위기의 쓰라린 경험을 잊지 말고 해외투자 활성화에 앞서 제2금융권의 부실정리와 구조조정부터 서둘러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