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을 거듭하던 국회가 다행히 정상화의 돌파구를 찾았다. 내년도 예산안과 그동안 계류된 법안들에 대한 심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빼놓을 수 없는 과제중 하나는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 동의다. FTA에 관한 한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오늘날 FTA 체결은 곧 경제동맹국의 형성을 의미한다. 전 세계에 걸쳐 2백개 가까운 FTA가 존재하는데, 단 하나의 협정도 체결하지 못한 채 소외된 입장이라면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동맹국 없이 경제전쟁에 홀로 나서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무역을 통해 챙길 수 있는 이익은 놓치고, 소외된 역외국으로서의 손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교역규모가 비슷한 멕시코는 이미 32개 국가와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앞으로는 일본 및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제외한 모든 FTA 협상을 중단한다고 할 정도로 여유만만이다. 멕시코는 협정을 체결한 국가에만 정부가 발주하는 대형 프로젝트의 참여 자격을 주겠다고 하니, 그만큼 우리 기업의 진출 기회가 봉쇄될 전망이다. 미국이나 EU와 같은 경제대국들도 예외는 아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비롯해 5개의 협정을 맺고 있는 미국은 남북미 대륙을 모두 포함하는 FTAA 협상에 적극적이고, 호주 등과도 협정을 추진중이다. 이미 33개의 협정을 맺고 있는 EU는 요즈음 남미국가들과의 협상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선진국 개도국은 물론 사회주의 국가들까지도 자유무역협정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특정 국가간에 협정을 맺으면 역내의 경제협력이 심화되게 마련이다. 반면에 참여하지 못한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해진다. 경제동맹체의 하나인 FTA에 맞서 또 다른 FTA가 체결되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세계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이 많아질 수록 여기에서 소외된 국가의 피해가 커진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관세나 비관세 장벽의 철폐뿐 아니라 투자, 정부조달, 규격인증, 환경, 분쟁해결, 경쟁정책 등이 폭넓게 포함되는 추세여서 그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다. 정부조달시장 참여가 제한된 멕시코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나라로부터 우리의 주력 수출품목이 차별대우로 인해 시장잠식의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우리가 주저하는 사이 칠레에서는 벌써 자동차 휴대폰 금속제품 등의 시장이 잠식당하고 말았다. FTA는 다자협상과 달리 체결상대국을 선택할 수가 있다.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나라와 협정을 체결하면 시장개방의 충격을 완화하면서 교역 기회를 확대시키는 계기가 마련된다. 칠레와의 FTA는 바로 그러한 점에서 의의가 큰 출발점이다. 세계 주요국과 이미 31개의 협정을 맺은 칠레는 FTA에 따른 국내 산업의 영향을 적절히 관리할 수 있는 규모인 데다, 우리나라와 산업 및 교역구조가 보완적이다. 우리나라는 공산품을 주로 수출하고, 칠레로부터는 원자재나 부자재를 중심으로 수입이 이루어진다. 중남미 진출의 교두보라는 점에서도 그 중요성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자유무역협정은 역내 국가간에 개방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때론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칠레와의 협상에서도 이점을 고려해 민감한 분야들을 제외하거나 유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에 부담되는 부분은 보완대책이 마련됐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농업 전반에 대한 검토와 보완대책이 마련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부족하다면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시점에서 FTA 그 자체를 부정하고 막아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19세기 말, 이미 한 세기 전에 시작된 산업혁명의 대세를 읽지 못하고 쇄국만을 고집하던 우리나라는 그 후 식민지와 후진국의 굴레를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었다. 이런 역사적 교훈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우선 먼저 한ㆍ칠레 FTA가 하루라도 빨리 발효돼야 하는 것이다. 沈永燮 <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협력실장 yshim@kiet.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