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로 경영권이 넘어간 외환은행이 장기표류하고 있다. 지난 11월5일 집행임원이 일괄 사표를 내면서부터 시작된 내부 동요가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악화된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외환은행 노동조합은 본점 1층 로비에서 연일 농성 중이다. 11월20일 단식농성을 시작, 7일째 밥을 굶고 있다는 외환은행 김지성 노조위원장은 이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깎지 않은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 얼굴을 덮었고, 말 한마디 떼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노조원이 아닌 간부급도 농성장에 들러 수고의 말을 건넸다. 은행노조 중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다는 외환은행 노조로서는 강수를 택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개개 행원들은 대의나 명분보다는 자신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지점에 근무하는 모 과장은 "행내에서 곧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다는 게 거의 기정사실화돼 있고, 매일 아침마다 그 숫자나 대상에 대해 다른 소문이 떠돈다. 앞으로 고용이 어떻게 될지 불안해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은행 분위기를 전했다. 입행한 지 4년째로 본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30대 행원은 "주인이 론스타로 바뀌었다 해도 아직은 나 같은 직원에게까지 피부로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전임 및 신임 임원들은 모두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고 있다. 이달용 행장직무대행 역시 통화가 되지 않았다. 노조 김기철 운영실장은 "앞으로 상급단체와 연대하는 것은 물론 지역별로 상시 파업할 수 있는 체제, 총파업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해 론스타의 명확한 입장 직접 표명, 고용보장 등 노측이 주장하는 바가 관철되지 않을 때는 더욱 강도 높게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당분간 외환은행의 내부 동요가 진정되기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갈등의 발단은 새 임원진 선임이었다. 이를 둘러싸고 론스타와 노조의 대립이 시작됐다. 10월30일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를 완료했고 곧이어 11월3일 이강원 행장이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다음날 트로스트, 메어포스 등 코메르츠은행 출신 부행장 2명의 퇴임이 이어졌고 11월5일 최성규 부행장 등 이달용 행장직대만을 제외한 4명의 집행임원도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이후 11월10일까지 경영공백 상태가 이어졌다. 이달용 행장직대는 11월10일 현용구 충청영업본부장, 민형식 서부기업영업본부장, 전용준 경영전략부장 3명을 신임임원으로 선임했다. CEO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 집행임원이 사표를 내고 새 임원을 선임한 것은 전례에 없는 일. 이 일은 내부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촌극도 연출됐다. 노조는 이날 인사부장실을 점거하고, 행장직대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행장직대는 자취가 묘연했고 인사부장에게 인사의 내용을 대신 방송하라며 CD를 전달했다. 하지만 노조가 방송실로 진입하는 바람에 방송은 불발에 그쳐 언론 등을 통해 공표된 인사내용이 정작 은행에서는 제때 알려지지 못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하루가 지난 11일 내홍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듯 했다. 노조는 이달용 행장직대에게 "론스타가 직접 입장을 밝혀야만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이행장직대도 이 같은 노조의 의사를 론스타에 전달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풀리는 듯했던 문제는 외환카드가 유동성위기에 빠지면서 외환은행과의 합병이 결정되자 다시 불거졌다. 노조는 위원장 단식이라는 강도 높은 처방과 함께 다시 농성을 시작했다. 외환카드와의 합병으로 대량 정리해고가 불가피해져 고용불안을 더욱 피부로 느끼며 다급해진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외환은행의 새 주인 론스타는 한번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이달용 행장직대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전달해왔다. 또한 외환은행 직원들뿐만 아니라 그 어떤 시선도 차단하려고 했다. 심지어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경영권을 공식적으로 넘겨받고 이사회가 열렸던 11월3일, 이사회에 참가했던 스티븐리 론스타코리아 매니저,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 마이클 톰슨 변호사 등은 기자들에게 사진을 찍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청원경찰들이 얼굴을 가려준데다 이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이사회장을 나왔고, 준비된 엘리베이터에 뛰어들자마자 벽을 향해 돌아서기까지 했다. 이처럼 노조의 강한 반발로 인한 내부 동요와 더불어,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후 아직 명확하게 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금융계에서는 이에 대해 각종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앞으로 외환은행의 여신정책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가장 많은 걱정이 쏟아진다. 무엇이든 직접 나서지 않고 간접적으로만 의사를 전달하는 론스타측은 외환은행의 여신관리 부문에 대해서만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직접 간여하려고 나섰다. 주금을 납입하기 이전부터 '론프리뷰팀(Loan Preview Team)'을 파견, 여신관리만은 직접 할 수 있도록 재빨리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여신감사실 소속의 론 프리뷰 팀으로 되어 있던 이 조직은 이후 여신본부 산하 특별심사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여신심사부 전종규 부장은 "이 특별팀과 여신심사부가 공동으로 여신관리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7명의 특별심사팀은 론스타측 인사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론스타에서 상무 직책을 갖고 있는 김광연씨가 팀장을 맡고 있다. 이 특별심사팀은 정기여신심사를 포함해 50억원 이상의 건별 여신에 대한 심사와 여신의 모든 권리변경 행위에 대해 공동으로 심사한다고 알려져 있다. 외환은행은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등 굵직한 업체들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맡아왔다. 이런 큰 워크아웃업체나 부실채권의 관리가 이 특별심사팀의 손에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론스타의 주요 업무가 부실채권 인수·매각이라는 데 있다. 부실채권 처리업에 발을 담그고 있는 론스타와 기업금융을 해 온 외환은행이 같은 영역에서 서로 이익이 상충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가 발생할 때, 투자펀드인 론스타가 은행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론스타 체제의 외환은행 경영 윤곽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행장 선임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금융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론스타가 헤드헌팅업체를 통해 젊은 행장을 찾고 있다거나 과거 경제관료 출신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떠돌고 있을 뿐, 이달용 행장직대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외환은행에 언제 새 경영자가 자리하게 될지 묘연한 상태다. 김수연 기자 soo@kbizweek.com ---------------------------------------------------------------- [ INTERVIEW : 김지성 외환은행 노조위원장 ] "론스타는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할 것" - 주주와 갈등을 빚고 있는데, 농성의 목적과 명분이 무엇입니까. *안으로는 고용안정, 밖으로는 외국 투기자본의 행태를 파헤쳐 그 실체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강제 구조조정이 없다는 약속을 론스타가 직접 해야 합니다. - 외환카드는 외환은행과의 합병 외에 다른 선택이 없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론스타가 아니었으면 외환카드가 이렇게 빨리 유동성위기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합병을 결정한 론스타가 증자 등 책임을 나눠지지 않은 상태에서 보완책 없는 합병은 반대합니다. 외환은행이 부실을 고스란히 떠안고 그 고통을 외환은행 행원들이 전적으로 짊어지게 되면 곤란하죠. 또한 외환은행의 경영진도 카드사 부실의 책임이 있으므로 대주주에게 이런 부분을 요구해야 합니다. - 대주주인 론스타의 어떤 부분을 우려하는 것인가요. *요즘 같은 글로벌 금융시대에 외국 투기자본이라 해도 돈이 있어서 회사를 사서 소유하는 것까지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 맞게 배당을 받아 돈을 벌되, 경영에서는 간섭하지 말고 손떼야 합니다. 론스타의 행태를 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여신문제도 그렇고, 도대체 지금 론스타가 보유한 부실채권과 외환은행 여신간에 겹치는 부분이 얼마나 있는지 자료를 가질 수 있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이런 것이 한국경제에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오게 될지 생각해 보면 알 것입니다. 또한 론스타는 투명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달용 행장직대는 은행 밖에서 론스타측과 접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양새가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요. 또 하다못해 저축은행 하나를 인수해도 자금 성격을 세세히 다 따지고 공개하게 만드는 금융당국이 어째서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에 대해서는 그런 과정을 뛰어넘는 건지, 일종의 특혜를 제공한 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최근 우리는 론스타가 입주한 역삼동 스타타워에 가서 노조의 입장을 알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어떤 관계자나 책임자도 만나지 못했고 그저 창구에 영문성명서를 맡겨둘 수밖에 없었죠. 전달이나 됐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