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중순, 신사복업체 GNSF에 재입사가 확정된 상태였던 김정백씨(현재 '석쇠와 돌쇠' 화곡1점 대표ㆍ40)는 회사의 긴급한 호출을 받았다. 김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기도 고양시의 롯데백화점 일산점에서 신사복 브랜드 '란체티' 매장을 운영하는 총책임자였다. 이 회사의 시스템은 '사내기업' 형식으로 이뤄져 있어 직함은 영업과장이지만 매장의 총책임을 맡은 그의 몫은 매장 전체매출의 15%였다. 여기서 직원 월급 등 매장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하고 남은 금액이 그의 수입이었다. 경기가 안 좋은 탓인지 올 1월부터 매출이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매출이 좋을수록 급여도 올라가는 성과급 방식이지만 그만큼 전체매출이 적자일 때 받는 고통도 컸다. 사비를 들여서라도 직원들 월급을 보충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실적을 주머니를 털어 보충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1,000만원의 빚을 지고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직은 여의치 않았다. 다행히도 그간의 성실성을 인정해 준 덕분인지 회사측으로부터 재입사 의사를 묻는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정말 잘해보리라는 생각으로 임했던 임원진과의 면접은 결과가 좋았다. 재입사는 확정적이었다. '다른 지점으로 새로 발령을 내려나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회사에 들렀지만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상사로 모시던 부장은 자신을 슬슬 피하는 눈치였다. 전무를 따라 들어간 사장실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된 전무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가 퇴사한 뒤 구조조정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결국 임원진 면접은 통과했지만 "있는 사람도 내보내야 할 시기에 재입사는 불가능하다"는 사장의 말에 '구조조정 1호'가 된 셈이었다. "눈앞이 캄캄했죠. '재입사 불가' 통보를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는 이때부터 직장생활 14년 뒤 처음 맞는 그야말로 '백수'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지난 14년간의 회사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88년 삼성제일모직에 입사해 갤럭시 브랜드의 백화점 판매직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렇게 2001년까지 현장경험을 쌓은 뒤 그해 여름에는 의류업체 하이파이브로 옮겨 역시 신사복 브랜드인 칼립소의 영업을 맡았다. 그리고 지난해는 GNSF로 옮긴 뒤 다시 백화점 현장에서 일해왔다. "'대인기피증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집 밖으로는 한발짝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친구들도 만나기 싫었고 아내와 다툼도 잦았습니다." 이렇게 쉬는 기간에 맞은 올해 추석은 "생애 가장 불행한 명절"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다. 하루 종일 집에서 인터넷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죽여야' 했지만 그래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에게는 "휴가 중"이라고 말해뒀다. 보름간을 이렇게 보낸 끝에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내의 힘이 컸습니다. 친구 중에 남편이 명예퇴직한 케이스가 있는데 한달 정도는 쉴 수 있지만 2, 3개월로 이어지면 그것도 면역력이 생겨서 나태해지게 된다고 하더군요. 제 성격상으로도 오래 쉴 수 없었습니다. 꼭 제 자신이 '아파트에 갇힌 새 한마리' 같았으니까요." 알고 보니 아내는 이미 자신이 처한 상황을 딸에게도 소상히 말해준 뒤였다. 자주 싸우기도 했지만 아내와 함께 미래를 고민했다. 재입사 실패의 쓴맛을 본 그로서는 더 이상 이직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창업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다행히 아내는 창업정보를 몇 년 전부터 수집하고 있었다. 부업을 하겠다고 벌써부터 조르던 차였다. "가정만 돌보게 하고 싶어서 제가 계속 반대했죠. 하지만 아내는 이런 상황을 예감했던 것인지 '이렇게 불안한 시대를 살면서 그냥 손놓고 살 수 없다'고 가게를 하나 내게 해달라고 꾸준히 얘기해 왔습니다." 그의 실직 이후 적극적이 된 아내 덕분에 삼겹살이나 라면체인점, 또는 갈비집 등 몇가지 아이템을 염두에 뒀다. 그러던 중 창업박람회 소식을 들었다. "날짜도 기억납니다. 9월4일이었는데요. 그날이 첫날이었어요. 박람회가 시작되기 1시간 전부터 입구에서 아내와 손을 꼭 잡고 기다렸습니다." 수많은 프랜차이즈회사의 홍보부스를 몇 바퀴쯤 돌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곰장어 전문점 '석쇠와 돌쇠'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이상하게도 이 부스에만 사람이 유독 많더군요. 시식하는 줄도 무척 긴데다 다들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었고요." 두말할 것도 없이 결단을 내렸다. 집에 돌아와서 바로 그 다음날로 프랜차이즈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때부터 일사천리였다. 아내와 딸을 차에 태우고 시장조사에 나섰다. 이제는 가게터를 잡는 일만 남아 있었다. 본사에서 추천해준 곳이 있었지만 거절했다. 집 근처에서 시작하기로 정한 만큼 지역주민인 자신만큼 잘 알 것 같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것저것 망설이지 않고 프랜차이즈 창업으로 마음먹은 것은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바로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프랜차이즈회사들에 대한 주위에 떠도는 소리도 많지만 본사에 대한 신뢰 없이는 제대로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연이 닿았던 덕인지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에 은행대출과 친구들한테 빌린 돈까지 투자해서 결국 10월 말에 전격적으로 가게문을 열었다. 서비스업종 근무 경험이 '큰 도움' "낮과 밤이 바뀐 것말고는 모든 것이 좋습니다. 서비스업종에서 10년 넘게 근무했으니 손님 대하는 거야 늘 편하죠. 아내가 함께 일하는데 워낙 그동안 일을 하고 싶어 했으니까 저보다 더 열정적으로 열심히 일합니다. 수입도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좋은데요." 첫달 성적은 순수익 700만~800만원 정도로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퇴사 3개월 만에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면서 수입도 좋아진 셈이다. "정년퇴직이 빨라져서 삼팔선이니, 사오정이니 하는 유행어가 나왔다고 하지만 저는 사실 체감하지 못했어요. 백화점 안에서만 생활을 하다 보니 시사문제에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던 거죠. 상가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제야 현실을 직시하게 됐습니다. 지난 3개월의 시간이 제 인생뿐만 아니라 제 생각도 바꿔놓은 거죠." 그는 주변 상가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대학수학능력시험 기간이기 때문"이라느니, "환절기 때문"이라느니, 또는 "비가 많이 와서 그렇다"는 등의 갖가지 이야기들 속에서 불경기를 그야말로 '체감'한다고 했다. "아직 시작이니까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이대로만 간다면 남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45살이 됐을 때 제 가게와 아내 가게, 적어도 2개 정도의 점포를 거느린 사장이 돼 있지 않을까요?" 그는 주변 점포 사장들이 늘어놓는 고충이 자신은 살짝 비껴간 것 같다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소연 기자 selfzone@kbizweek.com -------------------------------------------------------------- [ 김사장이 말하는 Success Key ] ●명예퇴직의 시간이 오면 당황하지 마라.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으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망설이는 기간은 2개월 이면 충분하다. ●가족과 충분한 대화의 시간을 가져라. 자신의 미래는 가족과 함께 꾸려갈 시간들이다. ●창업박람회 등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 다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