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星來 < 한국외국어대 교수·과학사 >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왕 이렇게 사태가 불거지고 말았으니, 이를 계기로 국가가 담당하는 수학능력시험(수능)을 없애고 각 대학에 자기 대학 신입생 모집 방법을 맡기는 것은 어떨까? 나는 국가가 대학시험을 주재한다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사립대학에서 평생을 교수로 지낸 나로서는 내가 봉직하는 대학의 신입생을 정부가 정해주는 이 국가 입시제도가 못마땅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내 대학 학생들에게 정부가 등록금을 대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래전 국립대 강의를 나가면서 느낀 일이다. 국립대는 건물도 더 좋고 하다못해 분필도 더 좋은 것이 공급됐다. 가끔 분필 가루가 내 폐 속까지 빨려들 것 같은 공포감 속에 대학 강의를 하면서, 나는 내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와의 비교에 울분한 일도 있다. 정부가 교수 월급을 주거나 학생 등록금을 대주지도 않으면서 사립대의 학생선발권을 행사하는 것은 월권이란 생각을 늘 해 왔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대학 입시를 각 대학에 돌려주는 것이 옳다고 나는 판단한다. 각 대학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입시 사고에 대해서는 그 대학이 책임지면 그만이다. 또 규모가 작은 학교라면, 몇 개 대학이 연합해서 공동입시를 시행할 수도 있을 터이다. '작은 정부' 구현의 길이기도 하다. 이미 10년 동안 똑같은 방식으로 대학입시를 관리해 본 결과는 그 잘못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된다. 출제위원의 자격 문제, 문제 사전 유출 의혹 등등으로 말썽이 많아지더니,드디어 역사상 처음으로 채점 후에 복수 정답을 인정하는 꼴에 이른 것이 올해 수능시험이다. 이번 말썽이 된 문제 또는 다른 문제들이 수학능력 평가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도 솔직히 나는 의심스럽다. 5지 또는 4지의 선다형 문제란 수험생을 '눈치로 찍기' 훈련에만 익숙하게 할 뿐이다. 출제자로서는 어쩔 수 없이 함정을 파서 학생들이 얼핏 잘못 생각해 엉뚱한 답을 고르도록 유도하는 그런 문제를 낼 수밖에 없는 데에 더욱 문제가 있다. 이번 경우도 아마 함정에 빠져 원래 잘못된 답이라고 설정했던 5번을 찍은 수험생이 44만7천명이 되고, 정답 3번 선택자가 겨우(?) 9만명 남짓 밖에 되지 않자, 다수결 원칙을 동원해 둘 다 맞다고 결정한 듯한 인상이 짙다. 9명 때문에 44명을 희생시킬 수 없지 않은가? -그런 논리라면 앞으로 수능 시험은 다수결 원칙을 따라 채점하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 사회가 요즘 가고 있는 방향과도 일치하는 듯하다. 그릇된 평등의식과 그에 바탕을 둔 다수결- 얼핏 그럴 듯하지만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닌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제도로 갈 수도 없을 바에야,'카에자의 것은 카에자에게' 돌리는 것이 순리(順理)다. 나는 20여년 전 우리 학교의 입시 출제를 위해 서울의 어느 호텔에 1주일 정도 감금당해 지낸 경험이 있다. 또 당시는 인쇄 시설이 등사식일 수밖에 없어서 출제가 마무리되면 을지로에서 인쇄기술자를 몇 명 임시 고용해 들여와 2일 정도 감금된 채 시험지를 인쇄한 경험이 있다. 그 동안 기숙사 연수시설 등이 많아졌고,컴퓨터로 인쇄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이어서, 이제는 교직원들로만 충분히 훨씬 편하게 출제할 수 있을 것이다. 각 대학이 입시를 각각 관리한다면,우선 선다형의 문제에서 벗어나 주관식 출제도 가능하다. 시험을 서로 다르게 관리할 터이니 대학 서열화가 점수차이로 드러나는 일도 적어진다. 사교육비가 공교육비를 처음으로 초과했다는 보도다. 최근 몇 년 동안 해마다 10% 전후의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사교육비도 대학별 입시제도로 가면 진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면 강남 아파트 투기 역시 조금은 줄어들 것 아닌가! 그러나 그 어느 이유보다 중요한 일은 '대학의 일은 대학에 돌려주라'는 것이다. 정부가 대학 일에 너무 간섭할 이유가 없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