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카드가 사흘째 현금서비스를 중단했다는 '중대' 뉴스가 급전으로 전해졌다. 현금서비스가 안되면 결제서비스도 안되는 것 아니냐는 고객들의 문의는 신문사 전화까지 북새통으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금융시장은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는 양상이었다. 사안이 표면화된 것은 지난주 초다. LG카드에 단기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고 채권단은 2조원 규모의 자금을 수혈키로 하는 결정까지는 신속하게 했다.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이 갖고 있는 ㈜LG 지분과 LG카드 지분,LG투자증권 지분,그리고 10조4천억원의 LG카드 매출채권을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확약서를 제출했고 사태는 이쯤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가 싶었다. 그러나 채권단이 구 회장 지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나오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담보 부족액(6천억원)에 대해 구 회장의 연대보증을 요구한 것도 그렇지만 구 회장의 직계가족이 보유한 ㈜LG 지분을 모두 일괄 담보로 제공하라고 요구한 것이 협상을 교착으로 몰고 갔다. 관전 포인트는 역시 채권단 요구의 적정성 여부다. 대주주는 과연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며 채권단은 2조원의 여신에 대한 담보로 계열사 전부와 그룹의 지배권까지 담보로 잡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번 협상을 이해하는 고리다. 잘 알다시피 ㈜LG는 LG그룹의 지주회사다. LG전자 LG화학 등 33개의 사업자회사가 이 회사의 지배 하에 있다. ㈜LG의 지분을 내놓으라는 것은 LG그룹 전체 경영권을 내놓으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LG카드 한 회사의 문제로 45조원 자산 규모의 그룹 경영권을 모두 담보로 제출하라는 요구였으니 LG그룹으로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계열사들 간에 부실이 확산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은 정부뿐만 아니라 지난 수년 동안 금융회사들의 요구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LG 대주주들은 엄청난 자금을 들여가면서까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터였다. 바로 그 원칙,다시 말해 한 기업의 문제는 한 기업에서 끝내야 한다는 원칙이 지금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정부가 재벌개혁의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대주주의 책임과 권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동권론(同權論)이야말로 재벌개혁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지금에 와서 대주주에게 무한 담보를 요구하는 것이 주식회사의 본래 취지,다시 말해 '출자범위 내 유한책임' 원칙과는 무엇이 같고 다른지 그리고 소액주주 등권론과는 무엇이 같고 다른지 정부나 금융당국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출자 주식만큼만 권한을 행사하라는 것은 지금 국회에 제출돼있는 재벌개혁 3개년 계획의 대원칙이기도 하다. '권한은 지분만큼 책임은 무한대'의 엿장수 구호가 아니라면 채권단의 해법은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구 회장이 최악의 경우 LG카드를 버릴 경우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만 투자손실이 출자금에 한정되는 것이야말로 주식회사 제도의 참된 취지일 뿐이다. LG카드의 잘못과 책임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정부 정책에 편승해 무리한 영업을 펼쳐왔고 연체 등 부실과 위험관리에 안이하게 대처한 것 등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채권단이 내걸었던 요구조건들은 악덕 사채업자가 소액의 대출(2조원)을 미끼로 신체포기 각서(45조원)를 쓰게 하거나 이를 빌미로 인신매매에 나서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채권관리 리스크를 채무자에게 무한 전가(轉嫁)하는 또 하나의 도덕적 해이가 아닐까. 한국의 대표적인 금융회사들이 대주주 책임 운운하며 신체포기각서 수준의 요구조건을 내걸었다는 것이 차마 부끄러운 일이다.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