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컬러스 네그로폰테(미국 MIT 미디어랩 창설자)는 지난 95년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에서 21세기는 아톰이 아닌 비트가 지배하는 디지털세상이 되고,디지털의 특성인 접근성 이동성 정보능력은 삶의 방식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4년 뒤 빌 게이츠는 '생각의 속도'에서 디지털 정보기술의 발달로 세상은 빛보다 빠른 생각의 속도로 변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얘기는 틀리지 않아서 세계의 디지털화엔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의 경우 특히 빠른 속도로 디지털세상에 진입했다. 국내 초고속통신망 이용자가 인구 1백명당 21명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하더니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발표한 '2003 디지털접근지수(DAI)'에서 세계 1백78개국 중 4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다. 98년 20위에서 불과 5년 만에 미국(6위)과 일본(9위)을 제쳤다는 것이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시ㆍ공간을 초월해 지구의 양끝에서 실시간 e메일 교환과 무역상담,화상전화,온라인게임이 가능하고 다른 나라 도서관 열람도 가능하다. 세계 각국에서 발표되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다운로드받을 수도 있고,수백만명이 한 인터넷사이트에 접속함으로서 동시에 같은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기술이 그렇듯 디지털기술의 부작용 또한 심각하다. 스팸메일이나 개인정보 노출,포르노물을 비롯한 각종 유해정보의 범람은 디지털화의 그림자를 짙게 하고 있다. 국내의 디지털접근지수 4위가 반갑지만은 않은 것도 인터넷뱅킹과 온라인상거래,유익한 정보교환 등 긍정적 측면 못지 않게 지칠줄 모르는 포르노메일 공세,욕설과 비방으로 가득찬 게시판 등 부정적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수단의 완벽함과 목적의 혼란이 우리 시대의 특징'이라고 했거니와 데이비드 솅크는 '데이터 스모그'에서 "정보의 과잉은 삶의 질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스트레스와 혼란만을 가중시킨다"고 경고했다. 정보화가 수단을 넘어 삶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려면 "디지털기술보다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