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브루나이 공항에 도착한 북한 백남순 외무상은 차에 타려다 말고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북한에서 연장자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동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착각이었다. 한 카메라기자가 백 외무상을 가리지 말라며 공항보안요원들을 향해 "움직이지 말라"는 뜻으로 "돈 무브(Don?t move)"라고 외쳤는데 이를 동무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이처럼 영어와 우리 말이 혼동돼 종종 실소를 자아내곤 하는데 며칠전에는 청와대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72세 노령의 럼즈펠트 미국 국방장관을 맞으면서 "고된 여행일텐데 건강해 보인다"고 인사했다. 그러자 럼즈펠트 장관은 "생큐.아임 영(Thank you. I?m young)"이라고 화답했다. "아임 영"을 '안녕'으로 해석한 일부 배석자들은 그의 유머감각에 감탄하며 웃었다고 한다. 대표취재를 맡았던 풀기자들도 '안녕'이라고 기사를 만들었다. 발음상 헷갈릴 만하다는 짐작은 간다. 그렇지만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개운치가 않다. 노 대통령이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는 '이지 맨(easy man)'의 통역을 정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지 맨'을 '쉬운 상대'로 통역했다가 '편안한 상대'로 바꾼 것이다. 만만하게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 회담할 당시에는 '디스 맨(this man)'이란 표현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그 의미를 두고 '하대(下待)'라거니 '친근감의 표시'라거니 하며 의견이 분분했으나 누구의 말도 설득력이 없어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영어가 국제어로 자리매김되면서 영어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영어교육의 열기가 뜨거운데,아직은 듣고 말하는 수준에서 안도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한 나라의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선결과제인데도 이에 대한 관심은 뒷전인 것 같다. 통역의 오류나 단어의 오해가 빈번하게 빚어지는 것은 우리 교육의 현실과 결코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