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고 아늑한 질감을 주는 하이그로시 가구, 불투명 유리(foggy glass)와 광택나는 금속이 자아내는 첨단의 실내분위기.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미래 과학영화의 한 장면에서나 볼수 있었지만, 이제 독특한 소재의 가구나 가전제품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문화의 시대를 뒷받침하듯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 공간 소재도 인간의 감성과 한층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하이터치 시대라고 했던가.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물질문명이 고도화될 수록 인간적인 것을 찾는 욕구가 커지게 마련이다. 기업 활동은 소비자의 감성공략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애플은 파스텔톤의 색채와 반투명 재질의 부드러운 표면처리를 한 '아이맥'을 내놓아 세계 컴퓨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베네통은 강력한 색채 마케팅으로 세계적 브랜드 파워를 굳히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가전제품에 색채를 입히거나 거울이나 대리석의 느낌을 주는 고급스런 재질을 사용해 세계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동일한 성능의 제품이라도 디자인이나 소재, 표면처리 기술이 새로운 경쟁요소가 되고 있다. 이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산업시대와 달리 디지털시대는 단순히 겉모습을 아름답게 꾸며서는 한계가 있다. 과거에 비해 같은 종류의 제품이라도 기능과 모양이 다양해져 제품의 가치가 소재 질감 색채에 따라 크게 차별화되고 있다. 원재료가 가지는 재료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의도된 색상과 질감, 광택 등을 구현함으로써 제품의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 결국 새로운 소재의 개발, 표면가공기술 등이 곧 디자인 경쟁력과 직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독일 등 해외 유명기업들이 스타일을 비롯해 촉감 색상 등 소비자의 구매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기초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해외시장에서 우리 상품의 판매가격이 낮은 원인중의 하나는 감성측면의 후가공기술 취약이다. 지금까지 기술개발에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제품 디자인의 감성측면 강화에 힘써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프랑스의 패션디자인 관련업체 피치(Fitch Corporation)나 일본의 아트박스(Artbox) 그리고 소재개발 연구업체인 미국의 머티어리얼 커넥션(Material Connextion) 등은 최신 디자인 동향을 조사하고 소재 및 후가공 기술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제공해 제품 생산에 효과적으로 활용토록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다양한 소재 전시회를 통해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유익한 샘플을 제공하고 정보를 실시간 공유시킴으로써 기업이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 놓았다. 이 것이 곧 세계 디자인 트렌드를 리드하는 원동력이다. 제품의 조형, 색채, 신소재, 질감표현 등 복합적 디자인이 제품의 수준을 높이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와 관련한 기초기술을 대부분 일본 등에서 로열티를 주고 수입해 사용해 왔다. 따라서 기초기술에 대한 관심과 육성이 시급한 상황이다. 다행히 최근들어 몇몇 기업들이 공동으로 디자인 동향을 조사하고 컬러 및 표면처리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정부차원에서도 제품의 감성측면을 고려한 디자인 기초기술 및 상품 트렌드에 관한 세미나 및 연구가 진행 중이고, 관련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다음달 초에는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해 성공한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 12개국의 굿디자인 상품이 서울에서 선보이고 해외 최신 디자인 동향과 한국의 미래 디자인 산업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도 개최될 예정이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기업은 물론 일반 소비자들의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등 우리나라의 디자인 수준을 한단계 끌어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디자인은 제품과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중간자에서 한 걸음 나아가 혁신적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다. 소비자의 감성을 공략하는 복합적 디자인만이 제품의 가치를 높이고 수출을 늘릴 수 있는 지름길이다. /chkim@kidp.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