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전국 농민의 80∼90%를 대표하는 농민단체입니다."(전국농민단체협의회) "농촌 현장의 정서를 대변하는 대중 농민조직은 전농연 하나뿐입니다."(전국농민연대) 전국농민단체협의회(농단협) 소속 19개 단체장들이 13일 농림부 기자실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국회 비준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칠레 FTA 처리가 농업계의 반대라는 '족쇄'에 묶여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 성명은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작 비판의 목소리는 농업계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농단협과 함께 양대 농민단체 상부 조직으로 꼽히는 전국농민연대(전농연)가 딴지를 걸고 나온 것.전농연 관계자는 "국가 농정 현실에 관심도 없는 품목별 생산자 단체가 무슨 대표성을 갖느냐"며 "한·칠레 FTA 비준에 대한 농민들의 반대 정서는 전혀 변한 게 없다"고 의미를 깎아내렸다. 전농연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등 8개 농민단체가 올 초 전국농민단체협의회에 반기를 들고 분가해 조직한 급진 노선의 농민 조직체.1백47명의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칠레 FTA 반대 서명을 이끌어낸 것도 바로 이 단체다. 오는 19일에는 대규모 농민 집회까지 예정하는 등 대(對)정부 투쟁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양대 농민단체는 두 개의 조직으로 갈라진 뒤 서로를 '급진 단체''친목 단체'로 내리깔며 대표성 시비를 벌여왔다. 이날 나타난 양 단체의 상반된 상황 인식과 주장은 결국 현장 농민들의 판단만 흐려놓는 결과를 불러오고 있을 뿐이다. 정부의 이중적인 농민단체 다루기 전략도 문제시될 수 있다. 전농,한농연 등 주로 전농연 소속 농민단체들을 상대로 농민 달래기에 나섰던 정부가 농단협을 한·칠레 FTA 국회비준의 '들러리'로 세워 전농연의 반발만 키운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져있는 농민단체,양 깃발 아래 헤쳐모인 농민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정부.그 사이에서 '통상 한국호(號)'는 끝모르는 표류를 계속하고 있다. 이정호 경제부 정책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