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경쟁상대는 홍콩입니다." 중국 상하이시 루하이쿠 해운국장이 늘상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루하이쿠 국장의 말에 2년 전만 해도 한국의 관료들은 코웃음을 쳤다. 현지 진출 기업인들조차 설마 했다. 당시 현실이 그랬다. 2001년 상하이항의 컨테이너 연간 처리물량은 6백34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홍콩의 3분의1이고 싱가포르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전세계 6대 항만중 부산항(3위)과 대만의 카오슝(4위)에도 뒤처진 5위.현대상선 상하이법인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강호경 부장 역시 루하이쿠 국장의 말을 '관료들의 통상적 립서비스'로 흘려들은 한국인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1백80도 바뀌었다. 강 부장은 "상하이항이 넘쳐나는 물량을 자체 소화하기에도 벅찰 정도여서 부산항을 경쟁상대로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실제 상하이항 처리물량은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1천1백만TEU를 돌파했다. 화물연대의 잇따른 파업과 태풍 '매미'로 허우적대는 부산항을 따돌리고 단숨에 세계 3위로 올라섰다. "5년내 연간 5천만TEU 처리능력을 갖춰 홍콩을 따라 잡겠다"던 상하이시 해운국장의 말에 지금은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고 한다. 다름아닌 '대소양산(大小洋山) 프로젝트' 때문이다. 이 거대 프로젝트는 얕은 상하이항의 수심을 극복하기 위해 남쪽으로 32km 떨어진 양산섬에 항만을 개발하고 이를 상하이와 다리로 연결한다는 것.중국 정부가 60억달러를 들여 추진 중인 이 계획은 내년 1월 1차공사 완료가 완료돼 4선석이 확보되는 것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52개 선석을 갖게 된다. 상하이가 초대형 허브항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양산신항은 수심이 깊어 중국 수출입 화물이 환적을 위해 구태여 부산항을 거칠 필요가 없어진다. 전체 수입의 45%,환적화물의 70%를 중국 화물에 의존하는 부산항엔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양산신항 건설현장을 바라보는 기자의 눈에 잇단 화물연대의 파업과 태풍 피해,물류허브 정책의 난맥상으로 하루가 다르게 시들해지는 부산항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상하이=산업부 대기업팀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