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이 둘러앉아 학생 체벌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체벌을 가하기로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먼저 학생들의 신체발달이 달라 비슷한 체벌이라도 감당하는 정도가 다를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여러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다양한 규격'으로 사랑의 매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다양한 규격'도 한동안의 토론을 불러왔다. 매의 길이와 재질 중량 등에 대한 토론은 실로 깊이 있게 진행되었다. 새로운 정보들이 공개되었고 그때마다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에는 체벌의 방법과 시기가 도마에 올랐다. 이 역시 결론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럭저럭 토론이 끝나갈 즈음 말없이 앉아있던 한 토론자가 불쑥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비해 면책기준도 필요하지 않은지"를 물었고 토론자들은 다시 고개를 싸매고 토론에 몰입해 들어갔다. 만일의 불상사에 대비해 간호교사를 증원하고 체벌 감시요원을 배치하기로 어렵사리 결론에 도달했다. 드디어 우리의 토론자들은 "우리는 정말 완벽한 일을 해냈다"며 두꺼운 체벌규정집에 서명하고 거기에 '체벌 로드맵!'이라는 이름을 만족스럽게 붙였다. 굳이 바보들의 토론장면을 장황하게 옮긴 것은 강철규 공정위원장이 출자총액규제 문제를 들고 하고있는 일이 이와 별로 다를 바가 없어서다. 강 위원장은 이달초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출자총액규제를 비롯한 참여정부 기업정책을 발표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것이 언제인데 지금에 와서야 로드맵 따위를 내놓는 것인지부터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내용이란 것이 '매'의 재질과 중량,길이,그리고 다양한 면책기준 따위를 규정한 거대한 토론집과도 다를 것이 없어서 장관의 직책과 월급,공정위의 권위와 예산이 아깝다는 생각부터 갖게 된다. 출자총액제를 폐지할 수 없다며 내놓은 새로운 판정기준이란 것만 해도 그렇다. '의결권 승수'나 '소유·지배 괴리도' 따위의 기상천외한 발상은 KDI의 지식재산권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학문적 연구를 제외하고는 그런 복잡한 계산공식까지 들이대 정부가 기업을 벌주는 잣대로 삼는다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 학문적 연구조차 설익은 터에 이를 공정거래법에까지 끌어들이는 강 위원장의 완벽주의적 이론 취향이 놀라울 따름이다. 당연히 없어져야 할 행정규제를 온존시키려니 온갖 아이디어들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 것은 차라리 자연스럽다. 공정위가 너그럽게도 출자규제의 예외로 인정해 준다는 밀접산업이니 근접산업 따위의 기준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떡볶이 가게에서 파는 매운 떡볶이와 덜 매운 떡볶이가 떡볶이의 밀접한 상품(투자)인지 아닌지를 공무원들이 판단하겠다는 나라는 이 나라밖에 없다. 만일 그것이 김밥이라면 또 무엇이 어떻다는 말인가. 장사치들이 잇속을 따져 업종을 고르는 것이지 공무원들이 나서서 업종을 심사하겠다는 나라에서 기업이,경제가 잘 돌아갈 리 만무하다. 휴대폰 회사와 금융회사가 소액결제 시장을 놓고 죽고살기 경쟁을 벌여가야하는 그런 시대다. 급기야 다양한 면책조치들이 등장하는 것도 바보들의 토론과 다를 것이 없다. 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계열사를 5개 이하로 줄이면 출자규제를 면제해 주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체벌의 면책기준과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주자학이 속류화하면 제사상의 진설을 놓고 멱살을 잡는다더니 지금 우리의 당국자들이 그런 사이비 합리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매를 내려 놓기만 하면 장시간의 체벌토론이 모두 공론(空論)이되고 말 듯 출자규제를 버리는 순간 그 '완벽한' 수식들은 한낱 심심풀이 퍼즐이 되고 말 터인데…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