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비자금사건 수사 확대로 수세에 몰리고 있는 재계가 관련 제도개선을 포함한 일괄 수습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정치자금의 공급자 역할을 해왔던 재계의 고심이 배어 있지만 더 이상 권력에 '맹종'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경련은 6일 발표한 정치자금 제도개선안을 통해 기업들의 정치자금 제공 창구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경제단체로 통일하되 돈을 내는 기업의 의사를 1백% 반영해 기탁처를 구체적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경우 '성장 위주의 친기업적인 성향을 가진 정당에 자금이 몰리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은 "바로 그런 흐름을 원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재계는 또 대선 비자금 수사가 무한정 확대될 경우 정ㆍ재계는 물론 국민경제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이 미칠 것을 우려, 민ㆍ형사상 일괄사면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상당수의 대기업들이 정치자금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우선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 일괄 사면을 한 뒤 향후 범법행위는 엄벌에 처하자는 주장이다.


재계는 결국 음성적인 정치자금 수수관행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라면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입장에서 대(對)국민 설득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 어떤 내용 담겨 있나


전경련은 일괄 사면의 경우 형사는 물론 민사상의 사면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상법 및 증권관련법을 비롯해 현재 국회 계류중인 증권집단소송법 등을 통해 과거 정치자금에 대한 주주들의 소송이 잇따를 경우 기업활동에 상당한 어려움이 야기될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치자금 개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정치권과 재계가 통렬한 자기반성을 통해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를 위한 민ㆍ형사상 사면에 필요한 면죄부는 특별법 국회통과 등과 같은 국민적 동의를 거쳐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제도가 개선된 뒤 이뤄지는 범법 행위에 대해서는 대가성 여부에 관계없이 엄벌에 처해야 하며 구체적으로 △정치자금법 위반자에 대한 피선거권 장기간(20년) 금지 △정치자금 관련 공소시효 10년으로 연장 △정치자금 관련 재판 1년이내로 단축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제도 개선안은 이와 함께 기업에 의한 직접 헌금을 막는 대신 지정기탁금 제도를 부활시켜 기업들이 각자가 선호하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자금 전달 창구는 중앙선관위나 경제단체 등으로 제한함으로써 정치자금이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 아래 전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 현실적 가능성은


이번 개선안은 우선 공급자인 재계 입장에서 마련된 만큼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당장 친기업적인 성향을 가진 정당에 돈이 몰릴 경우 '금권정치'의 확산을 경계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국민경제를 둘러싼 주요 정책이 지나치게 기업 위주로 편향되게 흐를 경우 정부나 노동, 소비 부문의 '시장 실패'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현 부회장이 "이번 제안은 정치자금의 '조성 및 제공단계'에 초점을 맞춘 것일 뿐 '사용단계'는 정치권의 몫"이라고 밝혔지만 사실 자금 제공 단계에 관련된 이해관계자가 반드시 재계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한국적 기업경영 풍토와 관행 속에서 과연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아 정치자금을 제공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조일훈ㆍ장경영 기자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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