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부동산 종합대책이 강북지역에 특수목적 고등학교 설치 등 교육정책은 빠진 채 발표됐다. 경제부처와 교육부처 간에 심각한 의견대립을 보였던 이 문제에 대해 대통령은 교육부처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하기야 부동산 투기억제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나라의 백년대계를 좌우할 교육정책을 왔다 갔다 할 수 없다는 교육부의 주장도 말이야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중등교육의 참담한 현실을 보면서 이제는 고교 평준화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현 중등교육 기조가 근본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등교육에 있어서 공교육이 황폐되고 이 자리가 사교육에 의해 대치된 지 오래다. 사교육비 부담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방비와 맞먹는 수준(GDP의 2.7%)의 엄청난 자원이 왜곡 배분되고 낭비되고 있다. 조기유학,교육이민,기러기 부부 등 망국적 교육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기본적으로 시장원리와 조화되지 않는 평준화 정책기조에 그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경제력 있는 교육수요자들의 강남 집중과 이로 인한 강남 집값의 이상 폭등도 평준화 정책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은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중·고교 평준화정책의 채택 이후 30년간 중등 공교육은 한편으로 교육 수요자의 수요를 도외시하고 한편으로 경쟁요소를 배제하면서 세계의 교육추세에는 눈과 귀를 닫은 채 끝없는 하향 평준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 과정에 소위 '열린 교육''참 교육'이란 이름의 논의가 이 추세를 더욱 촉진시켰다. 평준화정책이 추구했던 목표들, 즉 국민교육비 부담의 경감,공교육의 정상화,지역간 교육 균형발전 도모,학생인구의 대도시 집중억제,경제력에 관계없는 교육기회의 균등한 보장 등은 오늘의 교육현실에서 완벽하게 반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장원리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사회의 운영원리와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특히 엄청난 '교육열'로 반영되는 우리 국민들의 교육수요의 특성,수월(秀越)성 있는 교육을 받고자 하는 교육수요자들의 욕구와 전적으로 상반되는 정책방향이 초래한 이 모든 결과는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경제논리를 떠나서라도 어차피 사회는 경쟁 요소로 충만돼 있다. 경쟁 없는 교육을 추구하는 것은 경쟁 없는 사회를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수월성을 추구하는 교육수요가 공교육을 통해서 충족되기 불가능할 때 교육수요자들이 선택할 길이 무엇일까? 고교 평준화정책 기조에 대한 재검토는 교육에 있어서 시장원리를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인가,교육을 비롯한 비경제부문과 경제부문에 있어서 국정운영 원리의 일관성을 어느 정도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이제는 학교가 그 건학 이념에 따라 제공할 교육의 구체적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학생의 선발권도 학교에 돌려주어야 한다. 이 것은 물론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을 돌려주는 것과 교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의 공급자인 학교와 교사,교육의 수요자인 학생에게 경쟁의 원리가 다시 도입돼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과 학부모의 교육수요에 부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차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와 교육시장의 문을 열고 세계의 학교와 세계의 학생과 경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교육문제가 이미 교육 자체의 문제 영역을 넘어서 나라전체, 나라경제 전체를 끌어안고 붕괴되기 시작한지 오래다. 더욱이 오늘날 세계변화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가 '지적 사회로의 이행'이라고 한다면 교육에 있어서의 실패는 곧 국가전체,국민경제 전체의 추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현실을 그대로 두고 빠른 시간 내 2만달러 국민소득을 달성하겠다는 이 정부의 목표는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할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경영자들이 문제를 직시하고 시장의 원리를 기초로 한국교육의 틀을 다시 짜지 않는 한 한국,그리고 한국경제의 장래는 없다. ihkim@shink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