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을 안방에 차렸으면…’ ‘주머니에 은행을 넣고 다닐 수는 없을까?’ 과거에는 공상과학(SF) 소설을 보며 상상했을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안방에서 은행업무를 볼 수 있는 ‘TV뱅킹’이 등장했고, 휴대전화로 은행 거래를 하는 ‘모바일뱅킹’ 또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들 미래형 뱅킹 서비스가 어떤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지 그 모습을 들여다봤다. 올해 말부터는 각 가정의 TV로도 ‘은행업무’를 볼 수 있게 된다. 안방에서 TV 화면을 보며 간단한 리모컨 조작만 해도 처리되는 것. 이 같은 ‘TV뱅킹’은 혼잡한 은행창구에 찾아가지 않아도 은행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뱅킹’과 유사하다. 그러나 인터넷이 생활화된 20~30대가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뱅킹’과 달리 ‘TV뱅킹’은 인터넷에 친숙하지 않아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20~30대 젊은층은 물론 중장년층과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나이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연령과 지역, 성별에 따라 인터넷 이용률이 다르게 조사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ㆍ디지털 격차)가 ‘인터넷뱅킹’에도 반영됐던 반면, ‘TV뱅킹’은 이런 문제점을 줄일 수 있기도 하다. TV뱅킹에 본격적으로 나선 금융기관은 제일은행이다. 지난 9월 디지털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와 전략적 업무조인식을 갖고 ‘TV-뱅킹 서비스’를 내년 중에 선보이기로 한 것이다. TV로 이용 가능한 은행업무는 현재 인터넷뱅킹으로 하고 있는 모든 은행업무로 신규예금 및 해약과 각종 조회, 이체, 입금 등이다. 공과금 납부는 물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민원서류 발급을 할 수 있는 ‘TV-거번먼트(Government)’도 선보일 계획이다. 또 TV홈쇼핑에 별도의 전화주문을 하지 않아도 TV뱅킹으로 구입과 대금결제가 자동적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홈쇼핑 자동결제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 각 은행은 TV뱅킹이 본격화돼 서비스 이용 고객이 증가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은행지점 창구업무 중 상당부분이 줄어 지점 운영의 효율성을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일은행 관계자는 “인터넷뱅킹의 경우 고가의 PC를 구입해야 하고, 매월 고액의 인터넷 이용료를 부담해야 하는 반면, TV뱅킹은 TV를 보면서 필요시 리모컨 조작만 하면 은행거래를 할 수 있다”며 “대부분의 가정에 TV가 보급돼 있어 TV 구입에 따른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고, 월 유지비(시청료)도 저렴한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제일은행과 스카이라이프가 시행할 TV뱅킹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스카이라이프 위성방송에 가입해야 하는데, 제일은행은 현재 일정상품 가입고객에게 수신장비 일체와 설치비용(21만8,300원)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무료 제공할 예정이다. 우리은행 역시 오는 11월부터 케이블TV뱅킹 서비스를 도입한다. 우리은행은 온라인 TV 솔루션업체인 (주)휴웰테크놀로지와 제휴, 10월 초까지 TV뱅킹을 위한 시스템 개발을 완료할 계획. 오는 11월11일부터는 대전지역의 100가구를 대상으로 케이블TV 홈쇼핑채널에서 리모컨으로 물품대금을 결제할 수 있는 시범서비스를 실시한 뒤 내년 중에 전국적으로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2000년 외환은행은 ‘인터넷 TV뱅킹’을 실시한 바 있다. 외환은행은 (주)인터넷TV네트웍스와 제휴해 2000년 8월부터 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인터넷TV뱅킹 서비스는 인터넷TV용 단말기인 ‘셋톱박스’를 TV에 연결, 리모컨과 무선키보드 조작으로 인터넷전용선을 통해 은행에 접속해 은행업무를 볼 수 있는 금융서비스다. 계좌조회 및 이체, 해외송금, 신용카드, 공과금 납부 등의 업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전용선을 이용해야 하고, 셋톱박스를 설치해야 한다는 점에서 ‘TV뱅킹’과는 차이가 있었다. 인터넷전용선과는 별개로 TV만을 이용한 본격적 의미의 ‘TV뱅킹’은 올 연말부터 실시되는 셈이다. 해외에서는 ‘소파 뱅킹, 안락의자 뱅킹’으로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TV뱅킹이 이미 자리를 잡았다. 영국의 경우 지난 99년 9월 HSBC가 세계 최초로 ‘TV뱅킹’을 시작했다. HSBC는 영국의 위성방송사업자인 BSkyB와 손잡고 TV뱅킹을 진행해 나갔다. 시행 당시 HSBC는 ‘TV or not TV, That is the question’(TV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이라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를 패러디한 말을 만들어내며 TV뱅킹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HSBC측은 기존 점포망을 늘리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터넷뱅킹을 보급하려 했지만 영국의 고객들이 PC를 두려워한다는 점을 감안해 TV뱅킹을 시행하게 됐던 것. 그후 이 서비스는 성공을 거둬 새로운 금융거래 모델로 자리잡아 ‘소파뱅킹’(sofa banking) 또는 ‘안락의자 은행’(armchair banking)이라고도 불리게 됐다. 그밖에도 영국에서는 애비내셔널은행 등의 금융기관도 양방향 위성통신기술을 활용해 TV뱅킹을 서비스하고 있다. HSBC 외에도 미국에서 시티은행과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은행 등이 TV뱅킹을 준비했다. 일본에서도 지난 2000년 대형 시중은행들이 TV를 이용한 뱅킹서비스에 나선 바 있다. 사쿠라은행과 산와은행은 2000년 12월부터 방송위성(BS)디지털 방송을 활용해 고객이 TV 화면을 보며 자금이체와 잔고조회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효정 기자 jenny@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