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한다. 시인들은 영원의 세계를 흰색으로 말하고,죽음의 세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검정색으로 나타낸다. 붉은색 푸른색은 모두 생명의 세계를 묘사하는 색이다. 붉은색은 열정과 흥분의 색이고 푸른색은 우울의 색이다. 사랑은 붉은 색이고 젊음은 푸른색이다. 계절을 표현할 때도 색깔이 들어가야 그 느낌이 묻어 나온다. 색깔은 상징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의 색깔로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을 표현하고,음악도 색깔에 따라 그 풍(風)을 구분하며 즐긴다. 이념에도 색깔이 덧씌워져 대립과 반목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는데,우리 사회에 만연된 색깔시비가 바로 그것이다. 며칠전 한 국회의원이 대정부질문을 하면서 '색깔론'을 주장하는 의원들을 비판한다며 빨간색 선글라스를 끼고 나와 씁쓰레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처럼 폭넓게 인용되는 색깔은 특히 한글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듯하다. 빨간색만 해도 빨그대대하다 빨그댕댕하다 빨그레하다 빨그스레하다 빨그족족하다 빨긋하다 불그스레하다 등 색감묘사가 수도 없이 많다. 파란색 노란색 역시 그 표현이 부지기수로 많아 외국어로는 도저히 옮겨놓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는 우리의 정서가 그만큼 섬세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일부 색(色)이름이 바뀌고 기본색이 추가된다는 소식이다. 산업자원부 산하 기술표준원은 색 이름중 흰색은 하양으로 녹색은 초록으로 바꾸고,기본색에는 분홍과 갈색을 추가해 15개색으로 한다는 것이다. 지난 64년 이후 39년만의 조정이라는데,채도와 관련된 일부 수식 형용사의 쓰임새도 바뀌며 잘 쓰이지 않는 국방색 등은 없어진다. 어문체계를 정비하고 색상표현방법을 재분류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는 작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색상은 마음속에서 느낌으로 그려지는 것이어서 이를 획일적으로 재단하려 할 때 오히려 언어생활을 위축시킬 우려도 없지 않다. 영원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주는 색들로 우리 온 세상이 채색되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