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제까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것은 아닐까. 취임 1년도 채 못돼 스스로 재신임을 묻겠다고 나서는 노 대통령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쏟아진 요구 중에는 'CEO 대통령'이 되라는 주문도 적지 않았다. 경영 마인드를 갖고 시스템적으로 나라를 이끌어 달라는 기대였다. 실제로 노 대통령도 이런 요구를 의식한 모양이다. 당선자 시절 출간된 '노무현,리더십을 이야기하다'라는 책의 표지에 붙은 광고 카피도 '국가경영 CEO,노무현'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정말 CEO가 돼야 하는가. CEO라는 용어부터 보자.경영자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영어는 매니저(manager)였다. 이 단어가 지시·통제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는 지적이 일자 사람들이 새 용어를 찾아나섰다. 두 갈래였다. 하나는 GE의 전 회장 잭 웰치가 주도한 흐름이다. 그는 리더(leader)라는 말을 좋아했다. '열정의 리더' '감성 리더' 같은 단어는 이의 변용이다. 이와 달리 미국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최고경영진이란 뜻으로 이그제큐티브(executive)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이 최고경영진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Chief Executive Officer)이 바로 CEO다. 용어야 어떻든 CEO는 결국 기껏해야 일개 조직의 대표라는 얘기다. 나라 전체를 책임지는 대통령과 비교도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대통령에게 CEO가 되라는 것은 그러니까 작은 회사 사장 노릇을 잘하라는 말밖에 안된다. 엉터리 조언이요 요구인 셈이다. 기업 CEO가 하는 일은 비전을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자원을 배분하며 최고 성과를 목표로 회사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우선 비전을 세우는 일이 먼저다. '국내 최대의 정유공장' 같은 것이 비전의 예다. 비전은 한 글자 한 글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최대의 정유공장'과 '최고 수익률의 정유공장'처럼 엇비슷해 보이는 비전도 그 실행 과정은 완전히 다르다. 최대 정유공장이 비전이면 회사의 모든 활동이 외형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최고수익률이 비전이면 비용절감에 관심을 더 쏟아야 한다.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CEO는 항상 양자택일(trade-off)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외형을 얻으려면 수익을 포기해야 하고,수익이 목표면 시장점유율을 버려야 한다. CEO는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대통령이 그럴 수 있을까. 한 나라의 비전은 기업의 단순한 비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라는 비전은 모두를 위한 것 같지만 분배보다는 성장 정책을 택해야 달성 가능하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모두가 잘 사는 나라'가 비전일 경우는 "모두가 못 살게 될 것"이라는 '기득권'층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런 충돌하는 이해관계에서 하나만 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업 CEO와 달리 대통령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겠다'는 식의 어정쩡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파병을 예로 들면 반대론자나 찬성론자 양쪽을 만족시켜가며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정치가 화해의 기술이요,조정의 예술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통령은 하나만 택하는 CEO가 돼서는 안된다. 사회 각 부분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 자신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최근 '정치적 타결'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그런 점에서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전문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