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몰들이 무너지고 있다. 불황과 점포 과잉으로 장사가 안돼 문 닫는 패션몰이 속출하고 있다. 업종전환이나 매각을 서두르는 곳도 있다. 점포 임대료는 최근 1년새 거의 반토막이 났다. "동대문 패션몰 신화"는 이젠 먼 옛날 얘기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패션몰 수는 1백40여개.2001년 말 1백98개에 비하면 최근 2년새 약 60개가 사라졌다. 영업을 하고 있지만 빈 점포가 많아 상가로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을 더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이제 패션몰 업계에선 살아남기 경쟁만 치열하다. 패션몰 구조조정은 이미 본궤도에 올랐다. 부실 매장은 미련없이 팔아치우고 있다. 상인들을 붙들기 위해 임대료를 절반으로 낮추기도 한다. 또 고객들이 돌아오길 기대하며 앞다퉈 특화매장을 꾸리고 있다. 특히 지방 상황이 심각하다. 부산에서는 3년전에 문을 연 네오스포가 사업을 접었고 비슷한 시기에 오픈한 지오플레이스도 패션 매장을 닫았다. 지난 9월 개점한 광주 갤러리존은 매장을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영업을 시작해야 했다. 서울이라고 나을 게 없다. 90년대 말에 비하면 매출이 30%에 불과하다. 점포 프리미엄은 사라진지 오래다. 동대문 헬로에이피엠은 최근 보증금과 월 임대료를 최대 60% 내렸다. 1층의 경우 3천만원,3백50만원에서 1천5백만원,1백50만원으로 낮췄다. 남대문 메사는 점포를 2개 이상 쓰는 상인들에겐 관리비를 20% 깎아준다. 패션몰을 떠나는 상인도 줄을 잇고 있다. 동대문 일대에서 사업하는 부동산중개업자들에 따르면 최근 반년새 점포 매물이 20~30%나 늘었다. 임대료는 반년새 20% 떨어졌다. 밀레부동산 관계자는 "올 봄 2백50만원이던 밀리오레 1층 점포 월세가 2백만원으로 떨어졌다"며 "그런데도 세들겠다는 상인이 없다"고 말했다. 장사가 안돼 관리비나 홍보비조차 제때 내지 못하는 상인도 늘고 있다. 동대문 한 도매 패션몰 관계자는 "한 층에 5,6집 정도는 관리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인들은 보증금이 소진될 무렵이 되면 상가를 떠난다"고 얘기했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상인들간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동대문 한 패션몰의 등기분양 임차인은 "공실율을 감추려고 상가측이 등기분양자의 동의도 없이 헐값에 세입자를 들이고 있다"며 "세입자가 받아야할 임대료를 상가측이 착복한다"고 주장했다. 또 "점포가 비어 있는데도 등기분양자에게 관리비나 홍보비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패션몰들은 부실 매장을 과감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98년 "동대문 패션몰 신화"를 주도했던 밀리오레는 최근 대구점과 광주점을 매각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달엔 명동점 주차타워를 매각했다. 또 밀리오레 전 점포의 3분의2를 등기분양으로 전환해 자금의 유동성을 늘리기로 했다. 상가를 매각하기가 여의치 않자 일부 층을 일괄 임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부산 태화백화점 자리에 4개월 전 문을 연 패션몰 쥬디스태화는 지난달 초 가구 브랜드 한샘에 1천3백평에 달하는 7층 매장을 일괄 임대했다. 쥬디스태화의 김보경 홍보팀장은 "매장 고급화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한 층을 일괄 임대했다"고 말했다. 매장 리뉴얼 바람도 확산되고 있다. 패션몰의 일부를 명품 아웃렛,전자제품 매장,가구 매장 등으로 바꾸고 있다. 프레야타운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이월상품을 판매하는 아울렛 매장을 열었고 메사는 안경과 와인을 싸게 파는 디스카운트 매장을 열었다. 동대문 밀리오레는 이달 중순께 비어 있는 7층을 소형전자제품 매장으로 재개점한다. 90년대 말부터 3,4년째 이어져 온 패션몰 신축 붐이 사라졌다. 패션몰을 지어도 점포를 모두 채우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현재 분양하고 있는 대다수 패션몰에서 분양율이 50%를 밑돈다"며 "알짜 상권이 아니고선 패션몰을 새로 연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굿모닝시티 사기분양 사건은 패션몰 붐을 꺾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패션몰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면서 투자가 급속히 위축됐다. 서울 도심에서 만난 한 시민은 "서울 도심에 들어서는 새 패션몰에 입주할까 생각했는데 굿모닝시티 사건 후 마음을 바꿨다"며 "패션몰 개발업자들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고 푸념했다. 정부의 새로운 상가분양 지침도 패션몰 신축을 어렵게 할 전망이다. 건설교통부는 최근 "상가를 분양하려면 토지를 매입해 골조공사까지 끝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개발자금이 부족한 개발업자들은 패션몰 개발에 나설 수 없게 됐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2,3년내에 패션몰 경기가 살아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점포 과잉이 워낙 심한데다 소비심리가 잔뜩 위축돼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국 곳곳에 패션몰을 대체할 수 있는 아울렛 매장이 들어서고 있다. 패션몰이 자칫 "중국산 의류 판매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동대문 상인들의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동타닷컴의 신용남 사장은 "경쟁력 없는 패션몰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비자 취향에 맞춰 매장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경쟁력 있는 자체 브랜드 개발,백화점식 서비스,테마가 있는 쇼핑공간 구축 등을 들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