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이 왜 일을 안하는 지 아십니까.결국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모든 일이 결정된다면 누가 다른 부처와의 갈등을 감내하면서까지 일하려고 하겠습니까?" 정부 경제부처의 한 간부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문제로 얘기를 나누다 나온 말이다. 당초 정부는 수백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의 여유자산을 운용할 위원회를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떼내 총리실로 이관키로 결정했었다. 복지부가 감당하기 힘들 뿐더러 국민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복지부 산하에 그대로 둬야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수개월간의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이 일을 추진했던 기획예산처 직원들은 착잡한 표정이었다. 단순히 정책이 예산처 의지대로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 간부는 "정부가 어떤 정책을 결정해도 국회에 가면 이를 관철시켜 줄 주체가 없다"며 한숨부터 쉬었다. 다른 간부는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재현될 수밖에 없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여야간 갈등 때문에 정책결정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여기에 각 상임위원회의 요구와 이해관계가 겹쳐져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혹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도 이런 데서 연유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식이라면 로또 등 각 복권의 이익금을 국가 정책방향에 따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입안한 통합 복권법이나,연기금의 주식·부동산 투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조항을 없애는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도 국회에서 거부당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여당은 없고 청와대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힘의 공백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해집단들의 요구가 분출되고 국회는 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정치공방에 바쁘다. 도대체 국민들은 누구를 의지하며 이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야 할까. 김용준 경제부 정책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