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주주가 실질소유권보다 의결권을 얼마나 더 행사하는지를 판단하는 의결권승수(의결권/실질소유권)를 놓고 논란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자총액제한을 위해 이를 이용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자 재정경제부는 의결권승수에 따른 구체적 출자제한 기준을 제시했다. 출자제한 정도에 부처간 이견은 있으나 의결권승수 개념의 도입 자체에는 공감하는 것 같다. 의결권승수, 즉 지배·소유 괴리도 개념은 비정상적인 순환출자를 통한 이른바 가공자본의 문제를 어느정도 해소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효용성은 의문이다. 대기업의 소유구조는 누군가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가변적인 시장상황에 가장 효율적으로 적응(생존)하기 위한 무수한 의사결정이 현재의 소유와 지배구조를 결정지은 것이다. 도시계획의 개념이 없던 시대에 출발한 오래된 대도시는 보기에 무질서하고 비효율적일 수는 있어도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 온 역사와 사연이 담겨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투자결정을 순전히 기업지배를 목적으로 실행하는 기업이 몇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 환경은 일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험난하다. 순전히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지금의 소유구조를 형성했다면 지금 만큼의 경쟁력을 갖출 수 없었을 것이다. 지분율만큼 경영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시각도 문제가 있다. 5%의 지분을 가진 CEO가 5%만의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하는 것은 오히려 경영자로서의 책임을 태만히 하는 결과가 돼 95%의 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할 것이다. 5%의 지분을 가진 CEO의 경영책임은 1백%이다. 문제는 경영권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이지 지분의 규모와 경영자의 권한을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과거 일부 잘못된 경영권 행사의 그림자에 너무나 짙게 가려져 있다. 미국에서 주식을 거의 가지지 않은 CEO가 회사와 그 계열회사에 대해 전권을 행사하는 것이 문제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빌 게이츠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11% 주주이며 제이콥스 회장은 퀄컴의 3% 주주이다. 이들은 투명한 경영과 기술혁신, 엄청난 고용창출과 납세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최근 정부 정책에서는 대단히 혁신적인 어프로치가 발견된다. 내부통제시스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미 공정위는 공정거래분야에서 내부통제 자율준수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내부통제시스템이 잘 정비돼 있는 회사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감안해 '선처'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금감원에서도 시도하고 있고 금융기관들의 경우 법에도 일부 규정돼 있다. 미국에서는 여기에 사법적 효과까지 부여된다. 즉 내부통제시스템이 잘 기능한다는 것을 입증하면 이사와 임원들이 소송에서 법적 책임을 감면받게 된다. 내부통제시스템은 증권관련집단소송이 도입되면 더 중요해 질 것이다. 현재 부실공시가 발생하면 경영진이나 회계법인들은 면책 받을 길이 있으나 회사 자체에는 그럴 여지가 없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법인에 민·형사상의 문제가 발생하면 정작 고초를 겪는 것은 회사 사람들이지 법인이 아니다. 내부통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줄 것이다. 소유구조의 개선에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인위적인 조정은 비용이 너무 크고 신규투자를 지연시킬 것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특수를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바쁜 우리 기업들에는 부담이 되고 외자유치 등의 기회를 잃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외부통제제도는 필요하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다. 이제 가장 실용적인 어프로치인 내부통제장치와 그에 대한 행정적·사법적 효과 부여를 통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동시에 경영자들을 지원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려보아야 할 것이다.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논의에서 앞으로는 정치적 시각을 가급적 배제하고 기업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에 초점을 맞출 때가 됐다. 내부통제시스템은 그 핵심적인 부분이다. hjk@law.stanford.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