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과학기술정책 자문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사실상의 정책조정기구로 전환하는 방안을 청와대가 추진하고 있는 모양이다. 현재 순수 민간인으로 구성된 자문회의를 4개부처 장관을 포함해 30여명으로 인원을 늘리고 사무처장을 청와대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이 맡도록 한다는 것이 골자다. 부처간 정책 충돌이 많아 조정이 절실하다는 게 그 이유라지만 대통령이 위원장이고 13개 주요부처 장관 및 일부 민간위원까지 참여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라는 조정기구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마디로 중복 내지 옥상옥이란 비판을 면키 어렵다는 생각이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청와대 보좌관은 과학기술부 장관이 간사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선 공정한 정책조정이 어렵다고 타부처에서 불평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과학기술자문회의를 또 다른 정책조정기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공정한 정책조정이 어려운 이유가 단지 과학기술부 장관이 간사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운영상의 문제에 기인하는 것인지부터 냉정히 따져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개선방안을 내놓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한쪽에서는 대통령이 위원장이고 과학기술부 장관이 간사인 정책조정기구가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대통령이 의장이고 청와대 보좌관이 운영하는 정책조정기구가 있다고 상상해 보라. 과학기술정책의 혼선이 더욱 가중되든지 아니면 내각은 무력해지고 모두가 청와대만 바라보는 두가지 중의 하나일 것은 너무도 뻔하다. 우리처럼 과학기술부라는 별도의 행정부처를 두지 않고 대통령 과학보좌관이 사실상 과학기술부 장관의 역할을 하는 미국의 경우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내건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에 모두가 기대를 걸고 있는 지금 파워게임으로 비칠 수 있는 기구 문제로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