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나흘 앞둔 7일 오후 1시. 서울 양재동에 있는 농협하나로클럽 양재점은 장 보러 나온 손님들로 초만원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초가을 비가 무색할 정도다. 폭이 7m나 되는 통로가 꽉 막혀 있다. 52개 계산대에는 손님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족히 10m는 돼 보인다. 15분은 기다려야 계산을 마칠 수 있는 길이다. 과천에서 왔다는 김춘식씨(36) 부부는 "불황이라고 해서 느긋하게 쇼핑할 것으로 생각하고 왔는데 전혀 딴판"이라며 "주차장도 만원,매장도 만원,계산대도 만원…그래도 명절은 명절인 모양이다"고 말했다. 과일박스 수백개가 사람 키 높이로 쌓여 있는 청과 매장. 점원들이 박스 위로 올라가 가격을 외치고 있다. "사과 배 혼합세트 들여가세요.혼합세트는 쌉니다." 회사원 마천수씨(37)는 사과상자 배상자의 가격을 훑어보더니 이내 혼합세트를 집어든다. 양재점은 작황 부진으로 사과 배값이 치솟자 혼합세트 위주로 과일을 준비했다. 혼합세트의 특징은 최상품 대신 중상품을 담아 값을 낮췄다는 점. 과일부 노정석 차장은 "청과 매출의 30%를 혼합세트가 차지한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멜론 포도 복숭아도 많이 나간다. 도곡동에 산다는 주부 강지연씨(41)는 "사과 배값이 너무 비싸 대신 멜론을 택했다"며 "맛이 덜 든 사과나 배보다 맛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 차장은 "올해는 국산 멜론이 추석 과일 매출의 6%에 달할 만큼 인기"라고 귀띔했다. 정육 매장에는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고기 맛 좀 보세요.한우 냉장육이라 맛이 다릅니다." 점원들은 쉬지 않고 고기를 썰고 포장하고 있다. 정육 매장에서 가장 많이 나가는 상품은 국산 냉장육. 전체 쇠고기 매출의 절반에 달할 만큼 판매 비중이 높다. 지난해 추석엔 냉장육 비중이 35%에 불과했다. 축산부 정진홍 과장은 "수입 쇠고기를 따돌리기 위해 한우 냉장육을 늘렸다"며 "주력 상품을 냉장육으로 바꾼 덕에 매출이 작년 추석에 비해 10% 늘었다"고 말했다. 냉장육 혼합세트도 올 추석 인기 상품이다. 다짐육 국거리 등이 골고루 들어 있어 실용적이다. 가격도 갈비세트보다 훨씬 저렴하다. 이번 추석엔 쇠고기 돼지고기 다짐육을 섞은 '소·돼지 혼합세트' '갈비·국거리 세트' 등으로 종류가 다양해졌다. 가공식품도 매출을 끌어올리는 효자 상품으로 꼽힌다. 가격이 저렴해 선물용으로 많이 나간다. 참기름세트 대두유세트 커피세트 등은 '추석 매출 10걸'에 든다. 지난해 추석에 비해 매출이 16%나 늘었다. 가공식품 매장의 점원은 "지난 6일엔 참기름세트가 5백개나 팔렸다"며 "한꺼번에 대여섯개씩 사가는 손님도 있다"고 말했다. 나물 김치 햄 등 양재점에서 자체적으로 가공한 반조리 식품도 '매출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물 매장의 점원은 "젊은 주부들이 반조리 식품을 많이 찾는다"며 "품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매장이 붐비긴 해도 손님들의 카트를 들여다 보면 불황의 그림자가 가시지는 않았다. 값 비싼 고급품은 많지 않고 실용적인 상품이 가득하다. 이번 추석 대목 양재점 고객의 객단가(한번에 사는 상품 가격의 합)는 13만7천원. 작년 추석에 비해 2천원 늘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소비자들이 자신있게 씀씀이를 늘리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농협유통이 운영하는 하나로클럽 양재점은 추석 경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표적 매장으로 꼽힌다. 올 추석 매출은 우려했던 것보다는 나은 편이다. 추석 전 10일 중 6일간의 매출은 1백30억6천만원. 작년 추석에 비해 4.5% 늘어났다. 농협유통 홍보팀 조재호 부장은 "불황으로 매출이 줄까 걱정했는데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