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은 달라는 대로 드릴 테니까 3다이(15kg 한 박스에 30~39개가 들어가는 대과)짜리만 구해주세요.


이런 것으론 추석 선물시장에 절대로 못내놓습니다.


모양과 색깔 크기가 모두 부적격이에요.


이거,큰 일 났네."


추석선물용 사과와 배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6일과 27일 충주와 나주를 둘러본 롯데마트 김태선 바이어(33.계장)는 첫 방문지인 충주에서부터 한숨을 내쉬었다.


"보세요.서울 가락시장 사과 물량의 40%를 대는 이 충주원예농협 물류센터의 물건이 이 정도예요.


추석 전에 적어도 3만5천 박스의 고급품을 확보해야 하는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곳의 사정이 이렇다면 다른 곳은 둘러보지 않아도 뻔하죠."


26일 오후 2시 기자와 함께 이곳에 도착한 그는 물류센터 곳곳에 쌓여있는 사과를 일일이 만져보며 구입물량을 확인했으나 마뜩치 않은 듯 연신 고개를 떨궜다.


올해로 4년째 과일 바이어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추석이 1주일만 늦게 와도 이렇게 힘들지 않은데.솔직히 답이 없습니다"라며 유난히 이른 추석을 원망했다.


충주원협의 심진현 계장은 "사과는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좋아야 모양과 색깔이 좋아지는데 날씨가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며 "아무리 충주지만 사과를 찍어낼 수는 없잖아요"라고 반문했다.


현지에서는 유통업체간 물량 확보 경쟁도 뜨거웠다.


그는 대과가 많은 한 과수원을 찾았으나 이미 모 백화점에서 대과가 달린 과수원 한쪽을 몽땅 입도선매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사과 가격도 천정부지다.


대과 한 개당 소매가격이 7천원 이상으로 치솟을 것으로 그는 예상했다.


이곳에서 하루를 보낸 김 바이어는 27일 아침 배 산지인 나주로 차를 돌렸다.


나주는 올해 추석 배시장의 최대 수혜지역으로 꼽히는 곳.중부권 노지배의 맛이 들지 않아 모든 유통업체들이 나주배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같은 아침 9시 그가 도착한 곳은 나주배농협 공판장.다른 지역보다 피해가 덜하지만 상황은 충주와 비슷했다.


"배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네요.


대과는 찾아볼 수 없어요.


일단 최고급품은 하우스에서 나온 신고로 때워야 할 것 같네요.


노지배는 잡기 힘들겠어요." 김 바이어는 공판장을 한바퀴 둘러본 후 이렇게 말했다.


나주배농협의 현장 담당자인 김용신 대리는 "나주배는 중부권 배보다 1주일 정도 수확이 빨라 바이어들이 일찍 나주로 몰린다"면서 "올해는 중부권 상황이 더 안좋아 나주배 가격이 많이 뛰었다"고 전했다.


시장을 둘러보는 순간 굵은 빗발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김 대리는 "비가 또 온다"면서 "수확기에 큰비가 오면 배 당도가 뚝 떨어진다"라며 하늘을 쳐다봤다.


김 바이어는 "어떻게든 초도물량 작업만은 제때에 맞춰달라"고 말한 후 공판장을 나섰다.


이틀간 사과와 배 산지를 둘러보고 상경하는 김 바이어의 얼굴은 내내 어두웠다.


"지난해 추석에는 태풍으로 고생했는데 올해는 추석이 빨리 와서 고민이네요.


물량을 제대로 대려면 비라도 그쳐줘야 하는데."


충주.나주=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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