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기억과 망각의 길항작용(拮抗作用) 속에 살아간다. 잊지 못하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너무 잘 잊는 것 또한 끔찍한 일이다. 남들은 생생하게 떠올리는데 도통 기억이 안나면 난처한 정도가 아니라 덜컥 겁이 난다. 하려던 말을 깜박 하고,잘 알던 이름이 입 안에서 뱅뱅 돌면 답답함을 넘어 치매 증상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인간이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는 건 기껏 2초에 불과하고, 이후는 기억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도 기억 덕분이라는 것이다. 기억은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나뉘며 단기기억은 변연계 부위의 '해마(Hippocampus)'와 관련 있다는 게 통설이다. 단기기억은 금방 사라지지만,같은 정보가 반복되거나 개인적 감정과 얽히면 장기기억으로 머리에 남는다. 또 '시각과 감성,공간이 어우러진' 경험이나 지식일수록 잘 지워지지 않는다고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 추억이나 군대에서의 일을 오래 기억하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는 보고다. 기억력은 그러나 나이와 함께 감퇴된다.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갱년기의 호르몬 분비체계 변화와 대뇌피질 세포 퇴화 탓으로 여겨진다. 술이나 혈압강하제 우울증치료제 복용,비타민을 비롯한 영양소 부족,미세한 뇌혈관 손상이나 동맥 경화,갑상선 질환 등도 기억력 감퇴의 요인으로 꼽힌다. 장수시대 최대의 적으로 등장한 치매를 예방하고,손상된 기억력을 되살려주는 '기억력 회복약'이 곧 나오리라는 소식이다. 비아그라시장보다 클 것이라는 기대 아래 10여개 제약업체가 40여종을 실험중이고,미국 코텍스사(社)의 'CX516'은 2차 임상실험 결과 상당한 효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들 약의 효험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단 떨어진 걸 약으로 되찾기보다는 기억력이 나빠지지 않도록 평소 노력하는 게 낫지 않을까. 허브의 일종인 '로즈메리'향과 아침식사가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인다는 발표는 많고, 껌을 씹거나 단단한 것을 씹어먹는 게 단기기억 보관장소인 해마 활성화에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