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이 농산물 관세인하 방식, 농업보조금 감축폭 등 핵심 쟁점사항에 전격적으로 합의함에 따라 내년에 예정된 세계무역기구(WTO)와 우리나라의 쌀시장 개방협상이 한층 험난해질 것이라고 봐야 옳다. 그동안 농산물시장 개방에 미온적이던 유럽측이 입장을 바꾼데다, 쌀 등 일부 민감품목에 대한 예외인정 조항이 없어져 더욱 그렇다. 따라서 쌀재배 국내농가들이 자칫 큰 피해를 입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관계당국은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합의내용은 우리에게 상당히 불리하다. 우선 관세감축의 경우 민감한 품목그룹의 경우엔 평균 관세율만 규제하되 개별 품목에 대한 관세율은 수입국이 조정할 수 있는 '우루과이 방식'을, 기타 품목들에 대해선 관세 상한선을 설정하는 '스위스 방식'을 적용하거나 아니면 아예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그러나 민감품목의 경우에도 관세율을 일정수준 이상으로 올리는 건 어려우며 저율관세수입량(TRQ)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농산물 수입국의 부담이 커지기는 마찬가지다. 농업생산 보조금도 농업 총생산액의 5% 이내로 감축하도록 돼 있어, 앞으로는 쌀수매를 통한 가격지지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렇듯 농산물시장 개방에 대한 국제적 압력은 날로 커져만 가는데, 이에 대한 국내 대응은 별다른게 없으니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개도국 지위를 계속 유지해 쌀 관세화 유예조치를 연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게 농림부가 입만 열면 하는 소리지만, 그렇게 될지는 낙관할 수 없다. 미룬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닌 만큼 쌀생산량 조정, 쌀값 자율화 등 대응노력을 강화해야 마땅하다. 농가 피해대책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심의를 미루고 있지만 그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정부와 농민들은 농산물시장 개방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