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부의 국민연금제도 개선안이 발표됐다. 골자는 40년 가입 기준으로 연금 급여의 소득대체율을 현재 60%에서 2008년 이후 50%까지 낮춘다는 것이다. 또한 보험요율은 현행 9%에서 2010년부터 매 5년마다 1.38%포인트씩 조정해 2030년에는 15.9%까지 인상한다는 것이다. 개선안에 대해 각종 이해단체나 전문가들은 매우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연금의 재정적 취약성을 우려해왔던 학계 전문가들은 연금재정의 건전성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며,이를 조속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들은 연금개혁안의 급여 수준 삭감에 대해 근로자 후생 보호를 들어 강력 반대하고 있다. 경영자단체는 보험료 인상이 기업의 노동비용을 과다하게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역시 반대하고 있다. 근로자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노동단체나 기업경쟁력을 우려하는 경영자단체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국민연금제도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다. 그 문제점은 고급여-저부담의 불균형적인 구조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인구 고령화 현상에 있다. 현재 우리는 9%의 보험료를 내고 있으며,은퇴 후 소득대체율 60% 수준의 연금 급여를 약속받고 있다. 만일 국민연금 대신 민간의 개인연금에 가입했을 경우에는 이러한 급여를 받기 위해 22% 이상의 보험료를 납부해야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필요 보험료(22%)와 실제 보험료(9%)간 차이는 어떻게 메워야 할까? 정부가 마술사가 아닌 이상 누군가는 이를 부담해야만 하며,이의 부담 주체는 다름아닌 바로 우리의 후세대일 수밖에 없다. 현행 국민연금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2047년에는 기금이 소진될 전망이다. 그 이후에는 매년 연금 급여를 당해연도의 보험료 수입만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납부해야 할 보험료 수준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다. 예를 들면 2050년에는 소득의 30.0%,2060년에는 36.6%,2070년에는 39.1%를 보험료로 납부해야 한다. 먼 훗날의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이는 바로 지금 태어난 우리의 자식 세대들이 부담해야만 하는 몫이다. 다음 세대는 동일한 연금혜택을 받기 위해 우리가 내고 있는 보험료의 4배 이상을 부담해야만 하는 것이다. 반면 이번 개혁안이 실행될 경우 급여 수준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나,2070년까지 보험료를 소득의 15.9%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세대는 여전히 엄청난 혜택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 납부했던 보험료에 대해서는 60~70%의 소득대체율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보험요율도 2010년 이후 20년에 걸쳐 점차적으로 인상될 계획이다. 따라서 현재의 근로자는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보험료 가치의 평균 2배 이상의 급여를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도한 혜택은 고스란히 후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며,연금개혁이 늦어질수록 다음 세대의 부담은 비례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후세대간의 연금순혜택(급여가치-보험료가치)의 격차를 일부 경제학자들은 '세대간 도적질(intergenerational theft)'이라고 표현하길 서슴지 않는다. 다소 과격하지만,후세대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그들의 권익을 빼앗아 우리의 배를 채우고 있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누가 후세대의 이익을 보호해줄 수 있을까? 이익집단은 현세대의 근로자와 기업만을 생각할 뿐이지,후세대의 이익을 대변해줄 수는 없다. 국회도 현세대 투표권자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인기영합주의에 빠진다면 후세대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결국 이는 국민연금제도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의 역할일 터이며,이번 연금개혁안은 이런 차원에서 이해돼야 할 것이다. 소득대체율을 60%로 유지하든지 40%로 삭감하든지 간에,이에 상응하는 부담은 반드시 우리 세대가 책임져야 한다. 이를 무책임하게 자식 세대의 부담으로 떠넘기는 '세대간 도적질'은 이제 그만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