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통일주법위원회의 승인을 얻었던 미국의 통일상법전(UCC) 제2편(동산매매) 개정안이 올해 5월 최종적으로 미국법률가협회의 승인을 얻었다.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 특별한 수정 없이 통일상법전을 기본 상거래법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통일상법전 제2편이 곧 실제 거래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상법전 제2편의 개정은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전체 개정작업의 일환으로,그간 비약적으로 발전된 상거래관행 및 법리를 반영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특히 동산매매협약(CISG)의 내용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에 대해 개정논의 초기부터 많은 학자와 실무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동산매매협약은 80년 성립된 국제협약으로서,아마도 국제거래와 관련된 협약으로서는 가장 성공한 법규범일 것이다. 지난 7월 현재 미국을 비롯한 62개국이 여기에 가입되어 있으나,아쉽게도 우리는 실무·학계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가입국으로 남아 있다. 그럼 이번 미국의 통일상법전 제2편의 개정은 국제규범과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는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물론 통일상법전은 영미법에 근간을 두고 있고,동산매매협약은 기본적으로 영미법과 대륙법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기는 하다. 통일상법전은 문서로 작성된 약정에 구두계약보다 강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고 있는 반면,동산매매협약은 이러한 원칙들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거나 명시적으로 배척하는 것들이 한가지 차이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실제 매우 중요한 규정들에 대해서도 여전히 통일상법전과 동산매매협약 사이에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흠 있는 물건의 인도와 관련된 규정이다. 매도인이 계약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물건을 인도한 경우 통일상법전에서는 그 수령 자체를 거절할 수 있으나, 동산매매협약에서는 일단 물건을 수령한 후 그 계약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정도에 따라 대체품의 인도를 청구하거나 아니면 하자의 보완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대체품의 인도를 청구하려면 계약의 본질적 위반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이 차이는 실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계약목적에 적합한지 여부의 판단도 일반적으로 통일상법전보다는 동산매매협약이 훨씬 엄격하다. 따라서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통일상법전이 동산매매협약보다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95년 8월에 있었던 통일상법전 제5편의 개정과 대비된다. 제5편은 신용장거래에 대한 규정으로서,이 개정에서는 당시 국제규범으로 정착되어 있던 신용장통일규칙(UCP 500)과 실질적으로 대부분 일치하도록 개정됐다. 물론 통일상법전 제2편과 동산매매협약 중 어느 입장이 더 바람직하다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법체계 사이에 현실적으로 중요한 규정에서도 여전히 차이가 남아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우리 기업이 실제 외국기업과의 거래에서 계약의 준거법을 정할 때 많은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본 계약은 뉴욕주법에 의하여 규율된다'는 조항을 계약서 말미에 적어 넣었다고 하자. 미국은 동산매매협약에 가입하면서 '미가입국과의 계약에 있어서도 동산매매협약이 적용된다'는 협약조항을 유보했기 때문에 이 경우 계약 준거법은 뉴욕주의 통일상법전 제2편이 된다는 것이 유력한 견해다. 나아가 이 경우 법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없애기 위해 상당수 미국 기업들이 동산매매협약을 명시적으로 배제하는 조항을 삽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반대로 거래 당사자들이 동산매매협약을 계약의 준거법으로 약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계약에 어느 법이 적용되는지,그 법의 중요한 내용은 무엇인지 항상 유념할 일이다. 협상력에서 밀려 불리한 조항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더라도,불리한지도 모르고 별 생각 없이 계약서에 서명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