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더스의 개'(위더ㆍ1872)를 읽은 사람들은 네 가지 이름을 기억한다. 주인공 네로와 여자친구 아로아,충직한 늙은 개 파트라슈,그리고 네로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했던 그림의 화가 루벤스다. 네로는 성당에서 죽기 직전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말한다. "파트라슈,잘봐. 저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루벤스의 그림이야." 네로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거장 루벤스의 그림을 서울에서 보게 됐다는 소식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15일∼11월9일)에 렘브란트의 인물화와 함께 루벤스의 '젊은 여인의 초상''로마의 승리' 등이 걸린다는 것이다. 루벤스(1577∼1640)가 밝은 색채,관능적 표현,웅대한 구도로 이뤄지는 귀족적 회화의 전형을 보여줬다면,렘브란트(1609∼1690)는 빛을 이용한 명암과 극적인 구성을 바탕으로 인간 내면의 깊이와 고뇌를 표현하는 휴머니즘적 회화에 모든 걸 걸었다. 결과는 초기에 얻었던 돈과 명성을 모두 잃은 채 쓸쓸한 생을 마감한 것이었지만 오늘날 그의 위치는 다빈치와 함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양대 작가로 불리는데 손색이 없다. 루벤스와 렘브란트의 인물화가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같은 사실화의 놀라움을 만끽하게 한다면,20세기 현대화의 거장 샤갈과 피카소의 그림은 꿈과 열정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의 샤갈전(9월30일까지)과 순화동 호암갤러리의 피카소전(9월14일까지)이 그같은 현대화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자리다. 샤갈(1887∼1985)은 러시아 출신으로 사진 수정,발레단의 소도구 담당,무대장치 등 온갖 작업을 거치면서 사조나 이념을 떠나 보는 사람 모두를 동심과 향수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환상적 작품을 남겼고, 피카소(1883∼1973)는 사랑과 욕망 열정을 풍부한 상상력에 담아냈다. 니체는 "지각하는 모든 존재는 살기 위해 환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짓과 혼돈 속에 좌절하는 이들이 많은 이즈음,현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제 길을 갔던 렘브란트와 고향을 떠난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샤갈의 그림이 주는 위안에 눈과 마음을 맡겨보는 건 어떨까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