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암페타민 같은 각성제로 시작하죠.피곤함을 잊고 살찌는 걸 막기 위해서요. 다음엔 엑스타시예요. 패션쇼의 여흥을 만끽하기 위해서죠.그리곤 눈이 더 초롱초롱해지도록 코카인의 힘을 빌리고,현실에서 도피하려 LSD에 손을 대지요. 마지막엔 살아있다는 것을 잊으려 헤로인을 찾아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서 세계적인 톱모델 나타샤가 털어놓은 마약중독의 과정이다. 그는 이어 헤로인의 폐해를 고백한다. "헤로인에 중독되면 남들은 안중에 없고 거짓말도 아무렇지 않죠.몇초 동안의 환각을 더 얻기 위해 목숨도 버리려 들어요. 결국 어머니가 내 뇌에서 쾌감중추를 제거했죠.중독에선 벗어났지만 대신 감정도 잃어버렸어요." 서울지검 마약수사부가 최근 마약류 사범을 집중 단속한 결과 케이크를 이용한 '해시 브라우니'라는 신종 마약과자를 새로 발견했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국내의 '마약류 범죄계수(인구 10만명당 검거인원)'는 22.미국의 572(2000),태국의 353(2001)과는 비교가 안되게 낮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계수가 점차 줄어들지만(96년 594) 우리는 계속 증가하는 데다(96년 14) 실제 투여자는 검거인원의 20배가 넘고,사용 계층도 갈수록 확산된다고 한다. 더이상 마약안전지대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마약이 이처럼 급속히 확산되는 건 주사기를 써야 했던 필로폰 등과 달리 알약(엑스타시)이나 빠는 필름(LSD),껌(카트)처럼 먹기 좋은 신종마약 반입이 급증한 결과라고 한다. 마약과자도 이중 하나인 셈.여기에 해외 유학생이나 국내 체류외국인들의 영향으로 마약류에 대한 거부감이 희박해지고 인터넷 판매 등으로 유통이 쉬워진 것 등도 작용한다고 전한다. 그러나 마약에 한번 중독되면 '뇌'의 나타샤에게서 보듯 벗어날 수 없다. 불황으로 살기 힘든데다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라지만 그렇다고 마약에 손대는 것은 파멸을 부를 뿐이다.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사람들에게 '끝없는 이야기'(미하일 엔데)의 한 대목은 기억해둘 만하다 싶다. '공허함은 무엇으로도 없앨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사랑으로 채울 수 있을 뿐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