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위원회가 기업대출을 독려하는 대책을 내놓은데 대해 정작 돈을 풀어줄 시중은행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기를 살리려는 감독당국의 고민은 십분 이해하지만 `연체와의 전쟁'에 사활을걸고있는 은행들로서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게 아니냐며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 기업대출 완화 `성의'만 표시 금감위가 당정협의를 거쳐 ▲BIS 의무준수 비율 하향조정 ▲대출부실 책임 완화등을 골자로 한 기업대출 활성화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자, 일부 시중은행들이기업대출 완화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60000]은 금감원 발표이후 각 영업점에 일정한 목표를 두고 기업대출을 독려할 방침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기업대출을 무작정 늘릴 수야 없지만 그동안 일선 영업점의기업대출이 위축되는 분위기였던 만큼 가능한 범위내에서 대출을 늘리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BIS 비율이 10%를 밑돌아 기업대출이 위축됐던 외환은행[04940]은 정부가 BIS의무준수 비율을 10%에서 9%로 햐항조정키로 하자 "대출을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며 기업대출을 늘리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 그밖의 은행들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출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은행권의 이같은 움직임은 어디까지나 금감원 대책발표에 따른 `성의표시' 차원일 뿐, 실제로 여신정책상의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는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 대출독려로 부실조장 우려 최근 은행 경영의 최우선가치가 `리스크 관리'로 부상한 상황에서 금감원의 기업대출 완화 주문은 그야말로 `소귀에 경읽기'라는 게 시중은행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기본적으로 경기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당국의 말만 믿고 대출을 늘렸다가 대규모 부실채권을 떠안게될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은행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라는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일시적 자금경색에 직면한 우량 기업들도 있을 수 있지만 부실 징후가 이미 노출된 한계기업들의 운전자금 수요가 대부분이어서 대출부실화 가능성이 높다고 은행실무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우량기업의 경우 은행들끼리 `노마진 세일'까지 해가며 출혈경쟁을 하고 있는 반면 한계기업들은 리스크가 높아 서로 밀어내기에 바쁜 실정"이라며 "금융당국이 유인책을 쓴다손 치더라도 선별적 대출기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BIS 의무준수 비율을 낮춘 것도 내년말까지 한시적이기 때문에 대출을 크게 늘릴 경우 내후년 이후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는데다 은행의 생명인 건전성을 희생하면서까지 대출을 독려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금융당국의 정책방향은 공감하지만 건전성 기준인 BIS 비율을 낮춰 대출을 독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대출을 촉진하는 효과도 거두지 못한다"며 "국내은행의 BIS 비율은 여전히 미국(12%, 작년말)보다 낮은 11% 수준이며 취약한 금융인프라를 감안하면 더 강화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5년간 부실이 발생하지 않은 기업여신에 대해 은행 임직원들에게 책임을 묻지않기로 한 것도 `선언적 수준'에 그칠 것으로 은행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리스크 관리를 핑계로 은행들이 자금중개 기능이라는 본연의 책무를 도외시한 채 지나친 몸사리기를 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은행장들이 실적에 급급해 충당금 적립비율이 높고 문제발생 소지가 많은 기업대출을 늘리기 보다는 예대마진 확대나 수수료 인상 등으로 손쉽게 돈벌 수 있는 가계대출에 승부를 걸고 있는 행태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문적 리스크 관리능력은 결여한 채 특정 업종에서 이상징후가 생기면 면밀한 신용리스크 점검 없이 앞다퉈 여신회수에 골몰하는 관행은 근절돼야 한다고 금융계는 지적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rhd@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