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강경투쟁노선이 현장 노동자들의 지지 약화로 한풀 꺾이는 추세다. 강성노조 지도부가 계획한 시한부 파업투쟁이 현장 노동자들로부터 '비토'를 당하는가 하면 '파업투쟁은 이제 그만'이라는 현장의 목소리에 부응하기 위해 노조 지도부가 사측과의 협상에 나서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전국 금속노조 최대 사업장인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 노조는 회사측과의 임단협이 지지부진하자 사측을 압박하기 위해 23일 하루 시한부 파업을 선언했으나 조합원의 외면으로 무산되는 이변이 빚어졌다. 노조는 이날 오전 출근하는 조합원들의 통근버스를 플랜트 식당으로 이동시켜 투쟁에 불을 지피려 했으나 조합원들 대부분이 곧바로 사업장으로 이동해 정상조업을 했다. 이에 따라 노조 간부들만 8시간 파업을 하기로 했다. 이 회사의 한 근로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장기파업을 하는 바람에 회사가 15년만에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 지도부가 또다시 파업카드를 들고 나온데 대해 조합원들이 '비토'를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임단협과 관련, 사측은 임금동결과 능력급제 도입, 성과급지급을 제시한 반면 노조는 기본급 기준 12만5천원 정액인상 등으로 맞서 왔다. 두산 사측의 관계자는 "지난해 임단협을 체결하면서 단협은 2년마다 교섭키로 합의해 놓고 노조 지도부가 상급단체인 민노총의 하투(여름투쟁)전략에 따라 또다시 별도 요구를 들고 나온데 대해 현장 근로자들도 '지나치다'고 평가한 것같다"면서 "회사 경영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강경투쟁 노선이 산업현장에서 외면당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두산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노조가 일괄협상에 나선 것도 파업투쟁에 식상해하는 현장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사내 인터넷 홈페이지에 봇물을 이루는 등 '조합원 이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주5일 근무제 입법 저지를 위해 총파업을 계획했던 민노총이 전격 철회한 배경에는 최근 들어 급격하게 떨어지는 현장 근로자들의 투쟁호응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현장 근로자들이 강성지도부에 등을 돌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경기가 워낙 나쁜 상황에서 투쟁일변도로 나갈 경우 '일터(기업)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상습적인 파업투쟁에 대한 협력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비판도 노조지도부를 주춤거리게 만든 측면도 있다. 노동전문가들은 "비정규직 노조결성이 가시화되면서 그동안 세력화되지 못했던 대기업 산하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대기업 노조의 집단이기적인 임금투쟁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면서 "이는 대기업 노조 지도부의 투쟁 명분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민노총 계열 최대세력의 하나인 현대자동차의 하투(여름투쟁)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도 '노조 지도부 투쟁노선에 대한 현장의 거부감 확산'으로 요약된다. 얼마 전 쟁의행위 찬반투표 찬성률이 역대 최저인 54.81%에 그친데다 산별전환(금속노조가입) 투표는 부결돼 노조지도부를 경악케 했다. 이후 파업이 한달 넘게 계속되자 조합원들은 "파업은 이제 그만"이라는 목소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기아차 노조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기아자동차 노조는 지난22일 올해 임금협상과 관련, 쟁의행위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한 결과 전체 조합원 2만4천4백66명중 67.3%의 찬성으로 파업을 가결했다. 이는 당초 노조지도부가 예상했던 작년 찬성률 78.1%에 비해 무려 10.8%포인트나 낮고 역대 기아노조파업투표중 가장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전문가들은 "민노총의 전위세력으로 하투 선봉에 나섰던 자동차 업계 노조 지도부가 조합원들의 '현실노선'에 따라 기세를 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향후 노동계 전체의 기류를 바꿔놓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면서 "현대중공업 포스코 등 철강 조선업계가 이미 실리 추구로 전환한 상황에서 그동안 투쟁노선의 전위세력 역할을 해온 자동차 노조들이 노선을 바꿀 경우 산업평화가 조기에 정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태현ㆍ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