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1일 특별 기자회견을 자청, 대선자금에 대한 여야 동시공개 및 검증을 제안한 것은 크게 봐서 지난 15일 문희상 비서실장을 통해서 했던 것을 정치권에 재차 제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지난해 대선자금에 대한 여야간 공방을 불식시키면서 중장기적으로 정치개혁 논의에 본격적으로 불을 댕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주도권을 잡아 나가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생각대로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나라당이 "고해성사를 하려면 민주당이 먼저 하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때문이다. 또 청와대가 당정분리 원칙을 시종일관 강조해온 터여서 이번 제안이 민주당에 얼마나 먹혀들지를 가늠키 어려운 상황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15일 문 실장을 통해 '대선자금에 대한 고해성사와 검증'을 제의했지만 한나라당의 거부로 제안이 별다른 빛을 내지 못한채 오히려 '물귀신작전' 시비에 휘말리는 등 논란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국민들을 상대로 직접 설득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지난해 대선의 주요 전략이었던 '희망돼지 저금통' 모금에까지 시비가 옮겨지면서 현 정부가 내세워온 도덕성에도 흠집이 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노 대통령은 정치자금 문제를 공약인 정치개혁의 시발점으로 삼으면서 내년 4월 총선에 대비한 전략적 고지를 차지해 나가겠다는 의지도 깔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들어 청와대 일각에서는 "집권 중ㆍ후반기 국정과제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으로 내년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해야 하며, 대선자금에 대한 깔끔한 정리가 개혁추진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정치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낡은 정치의 악순환을 끊고 정치개혁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의 발표 여하에 따라서는 정치ㆍ경제에 핵폭탄이 될 수 있는 제안을 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노 대통령이 제안한 정치자금의 공개와 검증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공개 문제는 관계자들을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고, 정치권이 짜맞추기(분식) 자료를 만든다 해도 실사를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 또 "대선후보 경선자금까지 공개대상에 포함하자"는 수정 제안도 나올수 있다. 정작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무슨 자랑이라고 그 자료를 잔뜩 보관하고 있겠나. 다 폐기했다"고 말해 "유리한 내용만 공개하자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부닥칠 수도 있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