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1999년에 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렉서스는 보편화된 세계화 시스템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싼 차라는 이미지가 강해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던 일본차가 세계화의 상징으로 대표된 것이다. 80년대 당시 도요타자동차는 주력 차종이던 소형차의 이익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한국차의 시장점유율이 급격히 높아져 고민에 빠졌다. 양적인 수출의 시대는 지났다고 판단한 도요타 경영진은 부가가치가 높은 럭셔리 카를 내놓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덕분에 도요타는 89년 LS400 등의 렉서스 브랜드 차를 내놓으면서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렉서스는 무려 3천7백명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참여해 개발한 프로젝트였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 차이나 유럽의 고급차에 대항한 유럽형 럭셔리 카이기도 했다. 이 차를 개발하기 위해 벤츠와 BMW를 철저히 벤치마킹했으며 85년 20명의 연구팀을 미국에 보내 고급 주택과 고급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며 상류층 생활을 체험토록 했다. 부자들이 타고 다니는 고급차를 만들어내려는 각고의 노력을 보여준 일화다. 렉서스가 성공한 것은 높은 수준의 품질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지만 벤츠를 능가하는 럭셔리 카라는 브랜드 마케팅 활동도 크게 작용했다. 도요타는 '잃어버린 10년'이란 일본의 장기 불황 속에서도 안정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는 도요타에도 다른 고민이 생겼다. 품질과 기술 성능 면에서 경쟁차와의 격차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데다 베이비붐 세대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는 도요타의 주 고객층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미래 잠재고객인 젊은층에서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분석이다. 도요타가 젊은층을 겨냥한 '사이언'을 내놓은 이유다. 다양한 인테리어와 옵션 등을 통해 새로운 고객으로 부상하고 있는 Y세대를 적극 유인하고 있다. 과거의 성과에만 집착해 소비자 니즈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영원한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다. 김상권 사장 (현대ㆍ기아자동차 연구개발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