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타 공항에 도착했을 때 찌푸린 날씨가 서서히 개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들은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 데도, 도시와 산야 모두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거리의 간판들만 한글로 바꿔 놓으면 한국일 것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의 성과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국제 비즈니스는 늘 가슴 설레는 일이다. 상대의 정서나 문화 언어 등의 차이에서 오는 부담도 있지만, 짧은 상담에서 서로가 신뢰를 구축해야 하고,이해를 같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기업이라면 사전에 상대 기업의 충분한 정보나 인맥을 동원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상대와 대화를 통해 그 성패를 판가름하게 된다. 나는 습관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미지의 상대를 상상해 봤다. 이럴 땐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나 지식, 그리고 고정관념이나 확실치 않은 정보 등을 습관적으로 비워 버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과 언행,태도 등에 지난 인생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상대가 아무리 과장된 표현이나 몸짓을 하더라도, 자신의 경험이나 경륜은 그것을 금방 감지하게 된다. 한 시간 가까운 미팅을 갖고 일본인 N사장은 서로가 신뢰를 바탕으로 존중한다면, 오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며 악수를 청했다. 신뢰란 도덕과 양심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이제껏 우리가 지향했던 기업문화는 이러했다. 기업은 냉정한 승부게임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권모술수나 권력의 이런 저런 선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기에 모든 인맥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낡은 사고로는 이 시대에서 도태돼 버리고 만다. 현대사회는 투명성이 높아지는 사회이며, 모든 것이 순식간에 공개되는 특성이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은 시대와 함께 하는, 함께 사는 사회다. 이제 기업은 도덕ㆍ양심지수를 높여야 한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류사회에 기여하는 회사, 도덕성과 양심이 물결치는 기업이어야 한다. 우린 IMF 경제체제를 경험했다. 한국의 경제는 이미 세계화의 대열에 같이하고 있다. 도덕과 양심이 우선하는 기업의 신뢰는 세계 속에서 약진할 것이다. 입국을 서두르는 아침,동갑내기인 N사장은 "당신이 제시한 조건을 수용한다"는 전갈을 보내 왔다. 도쿄 하늘은 장마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을 드러내고 있었다. < digitalav@digitalav.co.kr >